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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넘어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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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758회 작성일 26-01-1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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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자정(子正)이란 무엇인가. 


시침과 분침이 가장 높은 곳에서 겹치는 그 순간, 세상의 시계는 하루의 마침표를 찍지만, 나의 시계는 기묘한 도돌이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자정이 노동을 뒤로하고 안식처로 향해야 할 경계선이라면, 나에게 자정은 그저 ‘두 번째 낮’이 시작되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과연 몇 번째 자정을 맞이하고 있는 것인가. 연구실에서 맞이했던 첫 자정의 기억은 날 선 불안이었다. 

낯선 기계들의 윙윙거리는 구동음. 무섭도록 조용한 흰 공간. 그리고 거울에 비친 설익은 나의 모습. 

모르는 것들이 나를 삼킬지 두려워, 혹시나 내가 오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여감은 자정이라는 이 고독한 시간에 홀로 깨어있는 감각에 무뎌지는 과정임을. 아니,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창밖의 세상이 어둠 속으로 침잠할 때, 오로지 나의 결과와 나만이 깨어 마주하는 이 적막. 지금 내가 이 책을 펼쳐 든 이유는, 자정이라는 시간 속에서 나만의 독백을 써 내려가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헤세는 왜 책의 제목을 ‘자정 너머 한 시간’이라 명명했을까.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 1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낮 세계의 풍파와 저속함에서 밤과 꿈과 아름다음 고독으로 밀려나는 것.”


헤세에게 있어 자정은 대낮의 소란스럽고 속물적인 현실로부터 도망쳐 당도한 영혼의 피난처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자정 너머’는 어떤 시간일까. 미팅과 행정, 소음의 낮을 뒤로하고 가로등이 달빛을 대신할 즈음, 자정이 다가오는 무렵, 나는 비로소 모니터 앞에 앉아 나의 결과들과 독대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과, 지금 나의 연구실은 헤세가 말한 '자정 너머'와 그 ‘섬’과 다르지 않다. 세상의 규율이 잠시 멈춘 시간과 장소. 오로지 현상과 본질만이 대화하는 곳. 헤세는 이 고립된 시간과 세계의 풍경을 책 속의 단편, ‘섬의 꿈’에서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달콤한 희열에 젖어, 바람을 향해 멀리 두 팔을 뻗고, 그 부드러운 숨결이 나의 손가락과 손을 따라, 

칼로 에는듯한 바닷바람에 익숙해있던 나의 관자놀이를 스쳐 흐르는 걸 느끼며 즐거워 했다.”


 헤세가 현실의 비루함을 견디기 위해 꿈의 섬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냈듯, 나 또한 불확실한 결과와 졸업이라는 기약 없는 미래의 불안을 견디기 위해 나만의 논리를 조각해 나간다.  대학원 생활이라는 것도 결국은 그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듯 하다. 거대한 학문의 바다에서, 남들이 이미 밟고 지나간 길이 아니라 나만이 찍을 수 있는 발자국 하나를 남기기 위해 오늘도 자정을 맞이한다. 때로는 그 과정이 지독히 외롭고, 고독할지라도.

 실패란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아직 그 언어를 온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실험 노트에 적힌 수많은 실패의 기록들은 아무도 밟지 않은 기슭, 그 너머로 가기 위한 조언들이 아니였을까. 그렇기에, 책을 읽을 수록 그가 나에게 더욱 속삭이는 듯 하다. 지금 네가 겪는 이 고독한 자정은 헛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너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예술적 제의와 같은 것이라고.

책을 덮으니 다시 연구실의 적막이 밀려온다. 창밖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이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자정을 이곳에서 맞이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학위라는 여정의 끝이 언제일지,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환희일지 아니면 또 다른 고단함일지 나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어제의 자정과 오늘의 자정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 해져 있다. 나의 지성은 미세하게나마 더 날카로워졌고, 나의 마음은 고독을 다루는 법을 조금 더 익혔다. 그리하여 나는 두려움 없이 다시 모니터의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늘 맞이하는 이 자정은, 지금까지 내 생애 가장 치열했고, 가장 발전한, 나에게 최선의 자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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