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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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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5,393회 작성일 17-06-3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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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이 소설은 신앙심 깊고 현명한 아내와 다섯 자녀를 둔 맥 필립스의 이야기이다. 맥은 자신의 세 자녀들과 캠핑을 떠났다가 어린 막내딸 미시가 실종되는 일을 당한다. 외진 숲 속, 버려진 오두막에서 딸아이의 피 묻은 원피스가 발견됨으로써 미시가 아이들만 노리는 잔혹한 연쇄살인범에 의해 납치되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사건 이후,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맥의 일상과 삶은 ‘거대한 슬픔’에 갇혀버렸고, “만약에 내가 ~하지 않았더라면”과 같은 회한에 괴로워하며 지내게 된다. 4년 후 여전히 슬픔 속에 살던 맥은 하느님으로부터 숲 속의 그 오두막으로 오라는 쪽지를 받는다. 파파(맥의 가족은 하느님을 그렇게 불렀다)로부터의 쪽지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리고 범인처럼 악한 사람의 장난 쪽지라면 그곳에 갔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맥은 오두막으로 갔다.

미시가 죽음을 당한 사건 현장, 자신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된 곳. 상처와 고통의 자리에서 맥은 하느님을 만난다. 이웃집 흑인 아주머니 같은 성부 파파와 중동 사람 성자 예수와 아시아 여성의 모습인 성령.. 각각 인간의 모습이면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그들과 나흘을 보내게 된다. 세 사람과 식사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체험하면서 그의 ‘거대한 슬픔’은 치유된다. 하느님께서 죄 없는 어린 딸 미시를 범죄로부터 구해주지 않으셨고 범죄자의 흉악한 행동을 멈추게 하지도 않으셨다는 원망으로 깨져버렸던 믿음을 회복한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내 판단으로부터 물러나 마음에서 놓아줌으로써 용서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과 가르침을 깨닫고 돌아온다.

신앙을 다루는 책의 내용은 대개 예측가능 하다. 한 인간이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외면하다가 어떤 드라마틱한 계기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오두막’은 여느 이야기와 같다. 그러나 전업작가가 아니었던 저자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글을 써서 처음 열 여섯 부의 복사본으로 시작해 베스트 셀러의 기록을 세우며 세계 46개국에서 출간되고 최근에는 영화로도 개봉된 이 책을 그런 일반화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한 것 같다. 그만큼 특별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폭력과 살상 또는 정의롭지 못한 뉴스를 전해 들으며 산다. 그런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당하는 이웃을 보게 되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여전히 활개치며 사는 모습도 본다. 때론 내가 힘없이 당하는 그 이웃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실까? 악인이 활개치고 선한 사람들이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일을 보고만 계실까?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살상에 왜 침묵하시나? 악의를 가지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왜 당장 멈추게 하시거나 벌주지 않으시는가? 삶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며 이런 질문을 할 때 사람들, 종교인들 또는 신앙서적의 저자들은 대체로 이렇게 대답하며 위로하려 한다. ‘하느님은 인간이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주신다, 고통 또는 악인을 통해 무언가 배우게 할 목적이시다, 악인은 언젠가는 벌을 받고 선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대답들은 내가 겪는 고통에 위로가 되지 않으며 질문에 답이 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맥을 통해 나는 좀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특별하다고 생각된다.

하느님은 왜 악인을 만드셨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나? 하느님께서는 고통과 악인을 따로 만들지 않으셨다. 더구나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배우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고통을 주시거나 악인을 만나게 하지 않으신다. 악인의 악행은 사람에게 허락된 자유의지를 스스로 잘못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악을 만들어 선을 가르치는 분이 아니다. 왜 악인을 없애버리거나 당장 벌하지 않으시나?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 역시 하느님께는 자녀이기 때문에 악인을 바로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는 것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용서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기다리신다. 아이가 말썽을 심하게 부린다고 해서 부모가 그 아이를 내다버리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왜 악이 존재하는가 왜 악을 치워주지 않는가’ 라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울부짖을 때 신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면서 모든 것을 주관해 주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많은 일, 인간관계에서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자신의 판단대로 세상이 돌아가기를 원한다. 잘 알지 못하며 선, 악을 단정짓거나 편의에 따라 선, 악을 결정하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맥은 아버지의 무차별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아버지의 술병에 독약을 넣어 두고 가출했었다. 방법과 동기와 관계는 다르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는 맥과 미시를 죽인 범인은 다를 바 없다. 그도 악인이라 낙인 찍힐 수 있었다. 그러나 맥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는 하느님만이 맥의 행동을 심판할 수 있고 그 즉시 심판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심판 대신에 오두막을 찾아온 맥으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할 기회를 주셨다. 무고한 어린 딸을 빼앗아 간 살인자에 대한 미움, 심판의 마음을 내려놓음으로써 용서하게 하고, 맥이 단서를 알아차려 범인을 잡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을 막도록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그림을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깊은 통찰력덕분에 종교적 추상성들이 쉽게 설명되었고 설득되었다. 크리스챤으로서 하느님 존재와 그의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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