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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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데이빗 핀처 감독
연신 닦아내도 차창 밖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살인사건 신고 하나가 뉴욕 시경찰국에 접수된다. 은퇴를 일주일 앞둔 베테랑 형사 서머셋과 신참 형사 밀스는 사건 장소로 함께 향하고, 그들은 이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낡은 집 식탁에서 그릇 가득 담긴 스파게티에 머리를 박고 죽어있는 피해자를 발견한다. 쓰러진 몸이 식탁을 가득 덮을 정도로 비만한 그의 아래 놓여있던 토사물로 가득한 플라스틱 박스와 시퍼렇게 변해있는 피부 등의 단서들로 그들은 타살사건임을 확신하지만, 이토록이나 엽기적인 방법으로 피해자를 죽인 동기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부검결과 찢어진 위장에서 발견된 날카로운 것으로 긁혀 패어진 페인트 찌꺼기들이 담긴 작은 통을 발견하고, 서머셋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사건현장을 다시 찾아가고, 그는 냉장고 뒤에 가려있던 살인자가 남긴 메시지를 발견한다.
Gluttony (식탐)
“Long is the way, and hard, that out of hell leads up to light.”
(지옥에서 빛으로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도다)
2시간에 걸쳐 재생되는 영화 내내 흐르는 하나의 코드는 바로 그로테스크 이다. 감독은 선과 악, 숭고함과 잔인함 등의 상반되는 이미지들을 한 화면 속에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어딘가 모순적이고, 찝찝한 느낌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이러한 느낌은 다분하게 의도된 것으로, 극 속에 흐르는 주제와 연관성이 높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한 그로테스크함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와 살인마의 생각 그리고 태도다. 단순히 엽기적인 돌발 행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위의 살인 사건이 바로 연쇄살인의 시작이었다. 연쇄살인마는 앞으로 저지르는 각각의 살인에 성스럽고 거룩한 이유를 붙인다. 성서에 나오는 7가지 지옥에 떨어지는 죄악(7 Deadly Sins)인 ‘식탐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자만Pride’, ‘정욕Lust’, ‘시기Envy’ 그리고 ‘분노Wrath’까지 각각의 이유를 들어 그 죄악에 대한 '심판'을 내리는 것처럼 포장하며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에서 비롯된 이 7가지 죄악은 단테의 「신곡」이나 존 밀튼의 「실락원」에도 등장한다. (메시지의 아래 문장이 실락원에서 인용되었다) 이 죄악들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그리스의 수도자 에바그리오 도 폰토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화되었는데, 이후 16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이 목록에 ‘시기’를 추가하고 기존의 ‘교만’과 ‘허영’을 하나로 합쳤다. 17세기에 이 목록은 다시 수정을 거치게 되어 ‘멜랑콜리’를 더 이상 죄악에 포함시키지 않는 대신 ‘나태’가 새로이 목록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목록 중 첫 번째로 살인마는 과도한 식탐을 가진 고도로 비만한 인간을 심판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영화는 6번째 시기와 마지막 7번째 죄악인 분노에 해당하는 장면이 묘사될 때 절정에 다다른다. 세 번째 살인 이후 두 형사가 살인마를 발끝까지 추적해내자 그는 대담하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의 숭고한 계획을 수정했다고 알리고는 5번째 살인 이후 온 몸에 피가 흥건한 채로 뉴욕 시경찰서로 직접 걸어 들어와 자수한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죽인 두 사람의 시체가 더 있다며, 서머셋과 밀스 형사가 자신과 함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준다면 모든 범행을 자백하겠다고 말한다.
사막 한가운데에 도착한 셋에게 이윽고 난데없는 택배가 하나 도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밀스의 사랑하는 아내 그것도 둘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의 잘린 머리가 들어있는 상자였다. 살인마는 밀스와 아내의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에 시기를 느껴 그녀를 살인하였고 그것이 자신이 행한 죄악 ‘시기’라 한다. 이에 ‘분노’한 밀스는 이성을 잃고 그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로써 살인마는 7가지 죄악을 모두 실현하고 자기만의 세계에서의 심판을 완성한다.
살인마는 두 형사와 함께 시체를 찾으러 사막 한가운데로 향하는 길에 자신의 살인행위들을 정당화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죄악을 온 거리 모퉁이에서, 온 집에서 목격하고 또 그걸 묵인하지.
그게 흔하다는, 일상적이라는 이유로 묵인해. 우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죄악을 묵인해.
이제 더 이상은 안 돼."
사람들은 윤리적 기준에서는 범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범죄가 아닌 행위들(극중 7가지 죄악인 탐식, 탐욕, 나태, 정욕, 교만, 시기, 분노와 같은)을 행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윤리적인 비난을 가한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인정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비난 섞인 시선은 본질적으로는 영화 속 살인마의 극단적 행동과 다르지 않다. 작 중 소재로 사용된 것처럼 성경 속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살인마가 우리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그는 그들을 직접 심판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살인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가 인용한 7가지 죄악의 모티브는 성경에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경에 나오는 십계명 중에 이런 계명이 있다. '살인하지 말라'. 그는 성경에서 파생된 개념을 기반으로 '심판'을 계획했지만 오히려 그 본체인 성경과 모순되는 행동을 자행한 셈이다. 심판자의 역할로써 남들과는 다른 높은 존재가 되려했던 자신도 이미 모순의 덫에 갇혀버렸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하는 이들이 사는 도시에는 선한 이가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죄인이다. 다른 남자에게 이웃 사람이 잔혹하게 살해되어도 방관하고, 성폭행당하는 여성은 ‘불이야’를 외쳐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머셋은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임신을 하자 낙태를 종용하여 결국 떠나가게 만들었고, 밀스의 아내는 임신 사실을 남편에게 숨기며 다른 남자와 옳지 못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화를 하곤 한다. 구체적 이름이 명시되지 않는 공간적 배경인 도시의 대부분 장면은 어두컴컴하게 연출되었고, 맑은 날에도 비는 추적추적 쉴 새 없이 내리며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안절부절 못하게 한다. 배경음으로 삽입된 사이렌 소리는 누군가의 불행과 죽음을 암시하며 불안을 자극한다. 이처럼 현대의 도시를 디스토피아로 설정한 것은 비록 1990년대 작품일지라도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우울하고 을씨년스럽고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서로에겐 무관심한 세상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서머셋이 단서를 찾으려 도서관에서 밤을 샐 때 흘러나오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조차 우아하지 못하다. 또 다른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것만 같은 공포감을 조성한다. 영화 마지막에서 서머셋이 나지막이 뱉는 역설적인 말은 쓸쓸하다 못해 슬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렇게 썼다. '세상은 멋진 곳이고, 싸울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나는 후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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