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어른이 처음인 당신을 위한 조언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곧 서른인 나이가 되었으니 어른이 된 건가. 결혼하면
어른이라 던데 그땐 세상살이에 적응도 되고 조금은 무감각해 질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언제든 그대로일 것처럼 참고, 견디고 또 능숙하게 살아가는 어릴 적 바라본 부모님의 모습을 좇고
있는 것 같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어설픈 티 안나게 살아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그리고
좀처럼 되지 않는 ‘어른살이’에 내 등에 짊어진 책임들을 잘
견뎌나갈 수 있을까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런 내게 위로 섞인 조언이 필요했을까, 오롯이 나를 돌아보고 싶어서 였을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접했다.
나를 휩싸고도는 불안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능숙하지 못함(어른스럽지
못함)에 대한 불안감인데, 내 안에서 생긴다기 보다는 타인이
어설픈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그 두려움에,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능숙한 척 연기해보는
것이 피로로 쌓여 나의 삶을 지치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바라보는 ‘어른살이’는 불필요할 정도로 서로에게 선을 긋는 사람들, 평범한 이들조차 기회가
있으면 차별과 멸시를 즐기는 주변, 또한 철저한 갑과 을이 되어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버둥 치며
사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나 또한 능숙한 척 연기를 하며 갑이 될 순 없어도 제발 눈에 튀는 을만은 되지 않도록, 차별과 멸시를 받느니 더러워도 차라리 차별하는 쪽에 설 수 있기를 발버둥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것들로 가득찬 끈적한 피로감에 젖어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면 그럼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두려움의 실체는 가난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비참함과 고립감이다.”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 중에서
밥벌이와
어른살이에 지친,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어른이 되어서야 다시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저자는 ‘어른아이’라고 말한다. 순전히 ‘내가 아닌 삶’을 견뎌내는 것이 ‘어른살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길
거부하고 진짜 나를 찾는 ‘어른아이’가 되고 싶다.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저열한 인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귀에서 나의 삶에 대해서 조차 내가 자신있게 갖지 못했던 떳떳함이랄지 당당함과
같은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느낌을 받았다. 내 삶은 내 것이 아니었던가.
냉담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하고 부당함과 모욕과 불안에 당당하게 맞서라며, “우리의 최선은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뿐이다.”라고 토닥이는 강한 어조의 저자의 말들에 내 삶을 다시 나에게 돌려받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내 것이라고 이게 나라고 내 입으로는 말 못했던 내 삶을 저자가 대신 큰 소리로 소리쳐주는 것 같았다. 또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 이전글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17.07.26
- 다음글세븐 17.07.0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