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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간 집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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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744회 작성일 17-05-3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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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간 집달리

 

 

최근에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진실의 종이라는 게임을 했었다. 진실의 종 게임은 질문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상금 300만 원을 주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상금 300만 원을 받게 되면, 아주 기쁜 마음으로 기부할 것이다.”

 

멤버들은 대부분 “그렇다.”고 대답하고 거짓말 탐지기 때문에 거짓말이 탄로 났지만, 유재석은 기부를 하겠다고 해서 통과했고, 박명수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통과했다. 곤혹스러워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내어 재미있게 웃었다 가도 진지한 생각도 들게 했다. 질문에 “아주 기쁜 마음”이라는 표현이 끼어있기 때문에 진실을 대답하기 어렵지 않았나 싶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공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억지로라도 “그렇다.”라고 대답을 했겠지만, 내가 만약 저런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절대 “그렇다.”라고 말을 못 했을 것 같다. 아무리 먹고살 만 하다고 해도 기부를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기부자는 정말 행복할까?

 

말리코른은 일 처리에 아주 능숙한 집달리이다. (*집달리: 법원의 명령에 의하여 서류와 물품의 송달, 벌금∙과료∙과태료∙추징금 또는 공소에 관한 소송비용의 재판 집행 및 몰수 물품의 회수 또는 매각, 영장의 집행 등 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진다.) 돌연 그가 죽어서 도착한 곳에선 자신을 천국에 보낼 것인지, 지옥에 보낼 것인지 재판이 진행된다. 재판관 성 베드로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준 그에게 지옥 행을 선고한다. 하지만 그는 “남에게 단 한 푼도 손해를 보게 한 적이 없고 꼬박꼬박 미사에 참석했으며 모두가 만족하도록 집달리의 직무에 충실했습니다.”라고 하나님께 상고 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유예를 선고하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게 된다.

 

세상에 내려오게 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선행을 베풀기로 결심한다. 바로 실행한 것은 그의 비서의 월급을 올려준 것이다. 아무런 구실도 생각해내지 않았다는 것에서 평소 그가 얼마나 베풂에 어색한지 보여주지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는 가난한 집을 순회하며 돈을 기부하고 자신의 노트에 크고 작은 자신의 선행을 일일이 기록했다. 그렇게 몇 권의 노트가 쌓여갈 때쯤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집달리만큼 착하다” 같은 아이러니한 표현까지 생겨났다.

 

여느 날처럼 가난한 집을 찾아다니며 돈을 보태던 그는 갑자기 공허한 기분에 휩싸였고, 어느 가난한 모자의 집에 들어간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는 경계심을 보이는 홀어머니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였다. 그때 때마침 집주인이 집세를 수금하러 모자의 집에 방문했고, 말리코른은 숨 막히게 조여오는 집주인에게 소리친다. “집주인을 타도하자!” 격양된 집주인은 그에게 방아쇠를 당기고 말리코른은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래요. 선행이라곤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선행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집달리이면서도 ‘집주인을 타도하자!’라고 외쳤으니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던 말리코른이 단지 그 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라고 해서 지옥 행을 선고받아야 했던 것일까? 나는 자기 일에 충실한 삶이 바람직하다고 항상 생각해왔기 때문에 성 베드로의 판결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가난해서 집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독촉해 돈을 받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 중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죽은 후 누군가가 우리의 인생을 평가한다면, 그들이 우리에게 들이미는 잣대는 적어도 이런 종류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가 다시 세상에 내려와 행했던 보여주기식 선행으로는 하나님을 설득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집주인을 타도하자고 외친 것이 어떻게 선행으로 기록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가난한 모자를 위해 집주인에게 대들다가 총에 맞은 것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고귀한 희생일까? 진정한 선행일까? 그가 죽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만큼 불필요한 죽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를 원하지만 진정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는것과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다르다. 나도 가끔은 진심이 우러나오는 행동이 아닌 '이렇게 행동하면 더 좋은 사람이니까'가 이유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말리코른이 보여줬던 형식적인 선행 또한 이런 종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형식적인 선행의 본질이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근본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우리의 인생이 나중에 평가받는다면 어떤 평가지표가 되어야 하는지부터, 형식적인 선행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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