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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향한 의지 - 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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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742회 작성일 17-07-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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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 감정을 동경했다. 나는 티비를 볼 때마다 아버지에게 무릎 베게를 해주시는 어머니와 아침마다 어머니를 위해 토스트와 스프로 아침을 준비하시는 아버지께서 계시는 집안에서 자라났고, 그런 내가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께서 보여주시는 행복한 부부생활을 보면서 나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단순한 불같은 연애를 꿈꾸기 보다 결혼과 가정을 바라보는 지극히 조숙한 연애관을 가지며 자라왔다. 이러한 조숙한 연애관은 줄곧 나에게 큰 딜레마를 가져오곤 했다. 마음이 생겨 연애를 하고는 싶지만 진지하게 하고 싶고, 감정에 이끌리기 보다는 이성적으로 나의 반쪽을 찾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는 진지한 연애를 할 엄두가 나지않아 기회를 뒤로 미루었고, 미루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25살이 되도록 손 한번 못 잡아본 연애 청정지역, 이른바 '모태솔로'가 되어있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연애를 함에 있어서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중요한 것 같다. 이성이 없는 사람은 눈 먼사랑을 하면서 자신을 쉬이 잃게 되지만, 감성이 없는 사람은 손해볼 것만을 따지며 누군가에게도 사랑을 줄 수가 없다. 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만의 소설 '행복을 향한 의지'를 읽으면서 사랑에 대한 감성과 이성의 역할과 그 대조적인 특징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줄기찬 열정으로 사랑했다. 그것은 그 또래의 소년에게서는 

보기 드문 열정으로 그로 인해 나는 가끔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 행복을 향한 의지 중 -


 소설 '행복을 향한 의지'에는 두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화자인 '나'와 화자의 친구인 '파울로'다. 파울로는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으로 소설에서 묘사된다. 파울로는 몸이 나서부터 병약하고 어린시절부터 줄곧 죽음의 그림자에 아래에 있었지만 늘 연애에 대해서는 열정적이었고, 그는 그 연애에 대한 열정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의 불 같은 성질은 그를 예술적인 감성을 지닌 화가로 살 수 있게 하였지만, 또한 그 성질은 그를 사랑으로, 결혼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파울로는 사랑에서만 감성적인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감성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처럼 유럽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자주 연락두절을 하며 사는 파울로의 삶은 그가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성적인 판단이 앞서는 인물임을 알게 한다.


 파울로와 대비가 되는 화자 '나'는 소설을 통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파울로의 감성적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점, 파울로의 표정이나 행동거지를 줄곧 제3자와 같이 관찰하고 분석하는 모습, 사람들과 연락을 끊어가며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파울로와 달리 파울로의 지인까지도 챙기면서 관계를 지속하는 관계성 등을 통해 화자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이성적인 화자에게 파울로라는 존재는 이해의 영역을 벋어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죽마고우였지만, 죽음이 되어서야 화자는 파울로의 일부를 이해할 만큼 화자와 파울로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었다.


 소설을 끝마친 후 나는 스스로가 너무도 화자와 닮아있음을 확인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친구들이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나는 그들의 연애감정이 너무도 서툴고 이른 연애는 그저 얘들 장난이라 여기며 그 친구들의 연애에 대한 열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연애를 동경하고 꿈꾸던 나였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 파울로의 그 모습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친구를 보낸 화자가 파울로의 인생을 회고하는 장면에서야 나는 파울로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행복을 향한 의지가 채워졌을 때 그는 죽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는 투쟁도 반항도 없이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 이상 살아갈 이유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행복을 향한 의지 중 -


 흔히들 사람은 그 주어진 사명을 다할 때 죽는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보내어진 이유가 있고,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 목표, 혹은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파울로에게 사랑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가 꿈꿔오던 여러가지 꿈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고, 그가 즐거이 여기던 여러가지 행복 중 하나가 아니었다. 파울로에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가 이땅에 살아있는 이유이고 그가 추구하는 유일한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늘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 살며 언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신체를 가졌던 파울로가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이루지 못했던 사랑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고, 열렬한 사랑의 결실로써 남작의 딸 '아다'와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은 그가 사랑의 꿈을 온전히 이루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있는 것은 뭔가가 나를 붙잡아두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 행복을 향한 의지 중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 감정을 동경했다. 어렸을 때부터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꿈이었고, 앞으로도 그 꿈을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파울로와 다르게 사랑과 결혼이 나의 유일한 사명이 아니며, 그러하기에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다 버리면서 연애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파울로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는 하지만 그 행동이 영웅적이거나 낭만적이라 느끼지 않는 것은 단순히 파울로가 감정적인 사람이고 내가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다. 내가 파울로와 같은 사명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사랑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내 사람'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나는 파울로와 같은 삶을 살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에게 하나 부러운 것은 그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성적이든 본능적이든) 그 사명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꿈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내 사명을 찾는다면 그의 모든 열정을 불사르고 죽음을 각오하며 그 꿈을 위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소설 '행복을 향한 의지'가 사람의 연애와 감정에 대해 다루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생각한다. 파울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을 통해 작가 토마스 만은 '사람이 그 사명을 다해 죽음을 맞이함이 행복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 꿈을 꾸고 어떠한 목표를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할까? 나의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이제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죽음보다도 귀한 행복을 향한 의지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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