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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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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467회 작성일 17-07-1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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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이연식 지음



   때때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 과거에 국내외로 여행을 다녔었던 사진들을 들춰보며 추억을 회상하곤 하는데, 가장 최근에 찾아봤던 사진들은 바로 몇 년 전 프랑스에 다녀왔을 때 찍었던 사진들이었다. 프랑스는 다녀 온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러가지로 머리속에 인상깊게 박혀 있는 장소이다. 매우 늦은 시간 해가 지면 높은 곳이라면 어디서든 휘황찬란한 조명에 둘러 쌓여 높이 솟아 있는 에펠탑을 볼 수 있고, 낮시간이면 어느 거리에서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잔디밭에는 젊은 커플들이 누워 애정행각을 하고 있는 모습도 쉽사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함이나 자유로운 분위기보다 내 머리속에 프랑스를 떠올렸을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한 폭의 그림이다.

 david.jpg


   이 그림은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표주자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이라는 그림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교과서나 유럽 역사 책에서 보았을 그림으로, 수많은 미술작품들이 모여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큰 그림이기도 하다. 가로 9.79 m, 세로 6.29 m의 그림 앞에 섰을 때의 그 웅장함과 또 정교함에 압도되는 것과 같은 느낌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나폴레옹이 자신의 관을 들고 황후인 조세핀에게 씌워주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 의아함이 들 수 있는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은 아직까지는 교황의 권위가 막강하던 시절로, 대관식이란 교황이 황제가 될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는 내 손으로 쟁취한 것이고 교회가 나에게 관을 씌울 자격 따위는 없다’ 라며 교황의 손에서 월계관을 빼앗아 자기 머리에 직접 씌우고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운다. 그 시절 드높았던 나폴레옹의 위세는 물론, 약화된 교황의 권위 역시 느낄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림 속에는 나폴레옹의 요구로 수정된 곳이 한 곳 있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나폴레옹이 황제에 자리에 오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어머니를 그려 넣으라고 지시했다. 즉, 그날의 현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도, 주문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편의 그림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단지 그림의 완성도에서 오는 감탄 뿐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의 단면,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에 엮인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조금 과장해서는 역사는 승자에 의해 충분히 주물러 질 수 있다는 사실– 까지 읽어 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술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면, 그 순간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흐름 역시 훨씬 더 재미있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미술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함께, 실제적으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미술의 시작점 이라고도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에서부터 출발하여 웅장하고 역동적인 바로크 미술과 우아하고 화려한 로코코 미술,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탄생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역사와 신화라는 틀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제재를 적극적으로 취하기 시작한 인상주의를 거쳐 눈의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보는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현대 미술까지의 미술작품들을 서양사의 흐름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그림에 감탄하며 그림속의 배경이 되는 역사의 흐름과 구체적인 이야기들에 심취하여 책을 읽어내 가다가,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부분에 와서는 조금 의아하면서 언짢은 기분마저 들었다. 책에 나와있는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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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그림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추상미술 작가 중 한 사람인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화포를 바닥에 펼쳐 놓고 그 위에 물감을 붓으로 흘리고 뿌리는 ‘드리핑’ 이라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그린 그림들은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폴록에게 유명세를 안겨 주게 된다. 일례로, 비슷한 방식으로 그린 그림인 No.5 라는 그림은 2006년 거래 당시 약 1억 4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사실 예술에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보기에는 이 그림이 앞에서 설명했던 중세, 근대 시대의 웅장한 그림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대인들이 자기가 살던 동굴에 낙서를 끄적여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구지 제목을 보고 의미부여를 하자면 가을이 되어 싱숭생숭한 내 마음속 어두움과 밝은 마음이 서로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시각, 그리고 약간의 특별함. 이것이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러한 의문은 작가도 가졌었던 것 같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정작 폴록 본인은 이런 그림을 그리며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3, 4년 동안 물감을 열심히 흘리고 뿌리긴 했는데, 점점 스스로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싶고, 의미 없는 일을 그저 주변의 흐름에 떠밀려 계속한다는 생각이 들어 화를 내고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고심 끝에 폴록은 드리핑을 그만두고 구체적인 형상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지만, 비평가들은 이러한 폴록을 한물 갔다고 선언버리고 만다. 폴록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결국엔 자신을 지탱해주던 아내와 다투고,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며, 술을 잔뜩 마시고 자동차를 몰다가 차가 뒤집혀 죽었다.


   이러한 새로운 것, 추상적인 것, 참신한 것을 추종하는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예술가가 한 것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1년 예술가인 피에로 만초니는 자기가 눈 똥을 90개의 깡통에 나눠 담고,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메긴 후 판매했다. 이 똥이 들어있는 예술작품은 2007년 경매를 통해 1억 7천만원에 거래되는 기록을 세웠다. 예술작품의 작품성이라는 가치보다 예술가의 유명세와 작품의 희소성에 가치를 두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똥이라는 예술작품이 이 시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예술은 시대를 나타내는 거울과도 같다. 우리가 헤브라이즘 사상으로 물들여 졌던 중세 시대의 미술을 보며 기독교적 색채만이 흩뿌려진 시대로 평가하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보며 인간적인 색채가 피어 난다고 생각하듯이, 먼 훗날 수백 년이 지난 후, 혹은 폼페이의 최후와 같은 어떤 재난이 우리시대에 닥치게 되어 세대의 교감이 끊기고 새로운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현대 미술에 시대를 비춰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아무 생각이 없는 시대라거나 혹은 달리기 위해 달리는 시대, 유명세를 위해 유명해 지는 시대로 평가하지는 않을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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