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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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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5,888회 작성일 17-05-3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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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작

 

책 읽기와 글쓰기만을 해온 젊은 지식인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박해 받는 동족들을 돕기 위해 갈등지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고 삶을 달리 살기로 한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해보는 것이 그것이다. 갈탄광 채굴을 하기 위해 크레타 섬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그 방면에 경험이 있는,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의 조르바를 만나게 된다. 조르바는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는 각지를 떠돌며 여러 가지 일을 해왔고 전쟁에도 참전했고 결혼도 했었지만 결혼에 속박되어 살지는 않았다. 조르바는 산투르라는 악기로 즉흥 연주를 하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본능에 충실했으며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내가 추구하며 살았던 책 속의 진리나 이론이 아닌 생동감 있는 삶의 체험과 존재의 자유를 느끼고 그렇게 사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 내면의 가치를 어떤 종교적, 도덕적 구속도 느끼지 않으며 행동으로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조르바는 “나”에게 놀라움이자 동시에 희열이다. 그와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글쓰기와 사색을 포기하지 못했고 내 관념, 이념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해 조르바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지만 서서히 그것들을 내려놓음, 비움으로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마침내 광산 사업이 실패로 끝나버린 순간에도 “나”는 절망하거나 낙담하기보다는 조르바와 함께 포도주를 마시며 춤을 출 수 있게 된다. 춤은 희로애락의 감정, 성공 실패, 소유와 무소유 등 인간사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의 표현이다.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 처음으로 춤을 추면서 “나”는 자유인으로서의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터키의 영토였던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터키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한 크고 작은 충돌과 전쟁을 겪으며 자랐다고 한다. 조르바는 작가가 광산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실재 인물이며 니체, 베르그송, 호메로스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던 인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실재 경험에 직접 만났던 인물을 투영하여 그가 추구했던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조르바를 통해 자유인으로서의 인간이란 어떤 것인지, 존재의 자유를 느낀다는 것, 그것이 표현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자유’에 대해 그리고 자유로운 자의 ‘열정’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조르바로 대표되는 ‘존재의 자유’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사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거나 획득하고 싶어하는 가치이다. 나에게 자유인 조르바의 매력은 그가 도덕적, 종교적, 관습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거칠고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초월하여 자유를 누린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다. 초월자, 능력자가 아니라 조르바는 평범한 어쩌면 평범 이하 수준의 하층민으로서 결코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삶의 지독한 절망과 슬픔을 초월하는 내면의 자유를 획득했다. 이 말은 우리가 인생에서 불가피하게 만나는 풍파를 ‘살아내자면’ 자유로워져야만 한다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여하튼 정신적 물질적 소유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가능한 일이고 그러기는 절대 쉽지 않기 때문에 조르바의 자유가 무척 의미 있고 대단하다.

‘존재의 자유’를 아는 사람은 삶에 더 열정적일 것 같다. 자신의 자유로움, 거침 없음, 막힘 없음이 삶에 투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르바 역시 그랬다. 일을 할 때 조르바가 완전히 몰두하여 밥을 먹는 것도 잊을 만큼 몰아일체로 일했다는 대목이 수긍이 간다. 본문을 인용하자면, ‘…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 취하게 했다. 그의 손에서 대지는 생명을 되찾았고 돌과 석탄과 나무와 인부들은 그의 리듬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면적 자유와 생동감 넘치는 사람이 집단에 부어주는 이런 생기 또는 열정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인간관계를 시작할 것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처음 만났고, 참으로 이질적인,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삶을 살아온 화자 “나”와 조르바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사람들 사이 관계와 우정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대를 억지로 변화시키지도, 무조건 따르지도 않는 것, 존재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상대방에게서 내 부족함을 찾고 채우는 것, 절대적인 믿음과 수용 등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화자인 “나”는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 모든 소유와 집착을 벗어버렸을 때 자유와 해방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는 삶과 사람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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