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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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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5,603회 작성일 17-05-3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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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현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아니, 과거에도 미래에도 기독교인들은 기도했었고, 기도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들은 그들의 염원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이 믿는 보이지 않는 신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나도 기도한다. 간절함의 크기가 클수록, 바라는 것의 이루어지는 시기가 가까울수록 나의 기도는 처절하고 진실하다.


 기도는 무엇인가. 책은 ‘기도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죄의 용서와 그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마음을 하나님께 들어 올려 이야기하는 것’이라 말한다. 사실 기도가 이것 만이라면 나는 여태까지 한 기도의 1% 조차도 기도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도를 했다. 아마 많은 이들의 기도가 그럴 것이다. 기도의 시작은 얼핏 ‘진짜 기도’처럼 흘러간다. 감사를 전하고 마음에도 없는, 외우듯이 나오는 몇 가지 구성들template을 읊조린다. 그런 후에 진짜 그날 하고픈 기도를 한다. “이것을 해주세요, 저것을 원합니다.” 등등 나에게 이득이 될수록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사실 이런 식의 기도라도 기도를 하지 않는 이들보다는 낫다는 생각한다. ‘나는 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 않으니 그것 자체로 내가 더 신앙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논리에서다. 요즘 현대인들은 너무도 똑똑한 나머지 영원히 발견할 수 없는 실체에게 기도하기를 꺼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심지어 기독교인 내에서도 꽤나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보다 그나마 기도를 하는 내가 더 낫지 않은가. 명철한 이성과 세련된 양식의 소유자들이 갖는 자신에 대한 신뢰는 그들의 명철함과 세련됨의 크기가 클수록 절대적이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은 칸트의 말대로 마음 안에 도덕률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용한 방에서 제단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유치한 촌극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기도를 한다. 모태 신앙이 갖는 유일한 장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별한 경험도 없이, 하나님을 향한 강렬한 뜨거움도 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를 나가며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따른다. 별다른 생각도 품지 않은 채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는다. 어쩌면 오랫동안 다니며 알게 된 교인들과의 친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태신앙인들은 대부분 쉽게 교회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던 기도를 쉽게 멈추지는 않는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횃불은 연료를 빠르게 태워 금방 타버리지만, 뭉근한 불꽃은 쉽사리 죽지 않고 새로운 연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 기도는 단순히 실행 자체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내용에서 수행자마다의 질적인 차이가 크다.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시오. 이런 것은 다 이방인들이 힘써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다 여러분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마태 6, 31-32)


 아! 내가 주로 하는 기도를 하지마라고 한다. 이미 하나님께서 다 아시니 굳이 다시 말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기도로서 간구하고자 하는 말을 하나님이 모를 수도 있는 것인가?” 책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원의와 우리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뜻 사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 있다고 한다. 심연의 깊이를 줄이기 위해, 기도 내용의 수정을 통한 질적인 향상을 꾀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가끔씩 기도를 하다보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처럼 기도가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혹은 기도하는 시간이 쉽사리 지루해지거나 작정한 시간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책에서는 기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마음의 건강이란 사랑이고 타인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하는 마음이 작아서 그런 것이다. 기도를 한다는 것이 사랑을 나누는 것인데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작다면 기도가 될 리가 없다.


 기도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다마스커스의 요한이 정의하였다. 온전히, 때 묻지 않은 형태의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 세상 속에서 찌들고, 속물이 되어 순수한 마음을 저버린다하여도 적어도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온전한 형태의 기도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기억할 것이다. 기도로써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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