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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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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032회 작성일 17-06-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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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저

 

   나는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그렇기에 주위의 어른들이나 학교의 선생님들도 보수적인 분들이 많았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자랐기에 박정희가 위대한 대통령이며 노무현은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보다 나이가 한창 많고 배운 것이 많은 분이 하는 이야기였기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수업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 혹은 사회시간에 4.19 혁명이나 5.18 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우지 않았고, 박정희부터 전두환까지의 경제 성장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이승만은 남한에 사회주의를 막은 인물이라고만 배웠지 매국노를 하루아침에 반공 투사로 바꾸어 적폐의 뿌리를 만들었다는 사실 역시 배울 수 없었다.

 

   그때는 아마 내가 10살이 채 안 된 나이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고 어떤 사람들은 돈을 적게 받는지 궁금했다. 다 같이 열심히 일하고 모두 평등하게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 좋은 세상이 아니냐고 어머니께 질문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생각하는 것이 공산당이 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문득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북한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죽었던 이승복 학생이 떠올라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6.25 전쟁 이후 40년이 지나서 태어난 나조차도 어린 시절 ‘공산당’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이렇듯 내가 배웠던 것들은 많은 부분이 편향되어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여러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분단 이후에 반공사상을 강요함으로 많은 친일파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한 것부터 5.16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대한민국의 어엿한 하나의 정당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들의 자손들이 대부분 금수저로 태어나 사회의 곳곳에 주축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가까스로 풀어내는 것보다 더 짜릿했고 충격적이었다. ‘보수’와 ‘반공’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왜곡되었는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몇 년 전 베트남의 호치민시티에 있는 전쟁 기념박물관에 갈 기회가 있었다. 아직까지 공산당이 지배하는 베트남의 전쟁 기념박물관에서 보여주는 전시물들의 내용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반공’이 아니라 ‘반미’였다. 미국이 무력으로 얼마나 베트남을 괴롭히며 학살을 자행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남한 사람의 눈으로 본’ 베트남 전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고 그렇기에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이 했던 것처럼 가해자의 입장에 있었고 일본과 같이 아무 사과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매우 유감스러웠다. 커가면서 느꼈던 많은 깨달음과 전쟁 박물관에서의 충격 이후 나는 되도록 많은 것들을 양쪽의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유시민의 <거꾸로 보는 세계사>는 세계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서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라 반대편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이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의 대장정,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같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사회주의 혁명을 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본주의의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 맹목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행해졌던 수많은 왜곡된 교육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유시민이 책에서 고백했듯이 1980년대 청년 지식인의 지적 반항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저서이다.


   결국,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몰락에 대해서 우리는 마냥 환호성을 질러서는 안 된다. 공산주의 혁명이 어떠한 배경과 환경에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하기에 이 책은 중요하다. 맹목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공산주의 혁명은 단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달라진 사회에 살고 있는가. 소수의 지주가 대량의 토지를 가지며 소작농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절반 이상의 이익을 땅 주인에게 주어야 하는 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시대와 노동자들이 매일 힘들게 야근하며 벌어들이는 대부분의 수익을 소수의 자본가가 가져가는 현재의 시대와 큰 차이가 있을까. 혁명이 아무리 실패로 끝났다고 할지라도 혁명의 시작과 의의를 아는 것은 앞으로의 사회를 만드는데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사회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진보의 발걸음에는 항상 역풍이 따른다. 많은 시민들은 독일과 프랑스의 민주주의를 부러워한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진보에 대한 역풍을 겪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을 수립했지만 그들의 손으로 히틀러를 당선시켰다. 또한, 혁명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프랑스 역시 대혁명을 통해 루이 16세를 참수하고 민주주의를 이루었지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됨으로 제국을 부활시켰다. 최근 미국의 극우파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마찬가지이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민주주의를 수립하는데 1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적은 비용을 치르고도 꽤 수준이 있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걸어온 발걸음을 뒤돌아보았을 때, 역풍을 맞은 적도 수차례 있지만 꽤 짧은 시간에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몰아낼 정도의 민주주의를 갖추었다. 수많은 혁명적인 목소리와 의견이 있지만 대중들이 새로운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사회주의 혁명에서 알 수 있듯이 소수의 혁명가에 의해 행해진 혁명은 그 중심에 있는 몇 사람의 사리사욕과 오판으로 인해 변질될 수 있다. 그렇기에 시민 각각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며 이에 따르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 성장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유럽의 몇몇 나라들처럼 공평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꿈은 먼 미래의 일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한강의 기적이 우리의 경제를 충분히 성장시켜주었듯이 작금의 사태와 시민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사회를 충분히 성장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사회주의 몰락을 보고 마냥 환호성을 지르거나 독일식 통일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부모 재산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지고,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는 바로 그 출발점부터 ‘출발 기회의 불균등’에 편입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규칙이 존재하지 않고, 자기 책임이 아닌 가난이나 장애 때문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돈 많은 사람과 힘 없는 사람에게 법을 다르게 적용하는 그런 사회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면 올바른 의견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힘있는 집단의 압력 때문에 그릇된 법과 제도를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中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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