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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 Good Better – 윌리엄 맥어스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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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673회 작성일 17-06-01 16:26

본문

Doing Good Better – 윌리엄 맥어스킬

 

이규섭


 사람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데는 망설임이 없지만, 하면 좋을 일을 하는 데는 적극적이지 않다. 좋은 일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일이라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면 좋을 일에 속한다는 점이다. 하면 좋을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행은 수고를 동반한다. 이러한 진입장벽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타주의적 사고를 행동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우선 한 걸음 나아간 사람들은 뒤돌아서 뒷사람들을 향해 꾸짖듯 선행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지만, 앞서 말했듯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을 때 다수의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그럼 이제 그 진입장벽을 넘어선 사람들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이 사회는 많은 이들의 이타적 행동을 필요로 한다. 사회의 필요 때문에 개인의 선행은 조직의 형태로 변하여 자선단체로 성장하게 된다. 그것이 개인이 행하는 선행보다 많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며, 때로는 더 효율적으로 자원을 활용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을 넘어오지 않은 수많은 사람이 블루오션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은 한 사람에게서 100만 원을 받는 것 보다. 100명에게서 만원을 모으기가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큰돈을 받기 위해서는 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지만 적은 돈을 많은 사람에게 받는 데는 감정을 호소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용대비 효과가 더 좋다는 뜻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자선단체들은 세상을 바꾸는 Doing good을 실현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그 해결에 필요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정된 자원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장 효과적인 사용처에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사용된 자원이 가치 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Doing good에서 그치지 않고 Doing good better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남을 돕는 행위가 단순한 기술적 문제보다 더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효율적 분배를 위해 과감히 포기된 부분들 역시 누구보다 절실하게 그 자원을 요하는 사회적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가능하면 내 돈을, 시간을 더 좋은 일에 쓰는 법을 고민한다는 건 좋은 이야기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를 진짜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먹구구식의 고민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이 더 좋은 일인지를 최대한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일을 선택하도록 공학적 기법을 도입하는 일. 이른바 효율적 이타주의가 무엇이며, 이를 위한 사고 틀이 어떤지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인 것이다.


 사회현상의 자연 과학적 분석이 대부분 그러하듯 현실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실험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편향되지 않은 분석을 위해 많은 분석기법을 도입하고, 암묵적으로 합의된 유효한 수준의 결과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분야의 논문들은 대체로 과학적 분석과 논리전개 사이사이에 데이터의 신뢰도나 연구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부분을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논지의 주장이 어려워진다. 책의 내용 역시 나름 보수적인 접근법과 신뢰할 만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논리를 펼침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앞서 말한 이유로 책의 내용에서 비판하려고 작정하면 못할 부분은 없지만 소개되었던 다양한 접근법과 사례 중 비판의 여지가 가장 컸던 한 가지 사례를 설명하고자 한다. 바로 “<기부를 위한 돈벌이>가 효율적인 이타적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행동의 효율성을 판단할 때는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저자는 의사 지망생의 예시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의사 지망생은 부유한 국가보다 가난한 국가의 의사가 되는 것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된다.(책에서는 각종 지표를 이용하여 이 사실을 좀 더 상세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던 이 남자는 마지막에 부유한 국가에서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수치적 분석을 통해 가난한 국가에서 의료행위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 부유한 국가에서 의료행위로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부유한 국가에서 의사로 일하며 그 이익을 기부금에 사용한다면 이는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계산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의사의 평균 기부율이 2%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그가 특정 비율 이상의 수익을 기부한다면 평균적인 수준의 기부를 할 다른 사람이 그의 의사 자리를 꿰차게 두는 것보다 더 많은 변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국가에서 행해지는 의료업무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그를 대신해서 근무할 수 있는 의사는 충분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큰 격차 때문에 선진국 수입의 적은 비중으로도 후진국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 나아가 예전과 달리 대부분의 일자리는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인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특별할 것이 없어 나를 대신할 사람이 널려 있다면, 내 현 상황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 기부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 기부를 위한 돈벌이가 직접적인 활동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나하나의 사례보다는 사고틀의 제시가 책의 핵심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책의 말미에 밝혔듯 이는 큰 허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이 사례뿐 아니라 효율적 이타주의가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에 해당한다. 바로 행위 당사자가 얼마나 이타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이다. 과연 큰돈을 벌고 난 뒤에도 타국에서 일하는 의사 이상의 효과를 낼만큼 많은 금액을 기부할까? 더 나은 선택지를 고름에 있어서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던 감정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있을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를 하는 데 능숙하다. 본인의 의도와 무관했던 일들을 합리화하는 일은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데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단순히 주먹구구식의 우선순위 비교로 치부했을 때 이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해 놓고서 나중에 기부를 하면 된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선택지가 어떤 조건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방식으로(책이 제시하고 있는 혹은 더욱 나은 최신의 기법을 도입하여) 정량화하여 행동 지침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관리해야 한다. 다시 말해 효율적 이타주의는 말 그대로 굉장히 효율적이며, 단순히 한 명의 개인이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공학적 접근법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수고로우며 쉽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저자 역시 해당 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던 만큼 효율적 이타주의에 있어 의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한 듯하다. 실천자의 의지를 유지하기 위한 네 가지 습관을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데, 보다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효율적 이타주의 커뮤니티나 해당 개념에서 시작된 단체들이 꽤나 자리를 잡은 모양이지만 여전히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은 부족하고, 효율적 이타주의 역시 충분히 실행되지 않고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이것을 단순히 독자의 의지와 이를 유지하려는 습관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너무 방관자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인에게 필요한 자세에서 그치지 않고, 부유한 국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는 지나치게 번거로운 방식이다. 책의 첫머리에 자선단체를 평가하는 방식과 제품을 평가하는 태도의 차이점을 지적한 것처럼, 자선활동을 권유하는 것도 영리기업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시스템의 차원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를 시도하기 쉽도록 보조도구를 제공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대충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기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일상에 자리 잡는 것이 보편화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에 비하여 노동의 강도는 같아도(혹은 줄었을지라도) 해야 하는 일의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진 현대인에게 자선활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운 위치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감정에 호소하는 자선단체가 주류인 지금의 모습이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다. 하나 본문에서 밝히듯 이슈화되고 있는 곳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덜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무심코 그 활용가치가 낭비되고 있는 자선활동의 행태를 다시 돌아보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은 충분히 가치 있는 행동임은 분명하다.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토대로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생각이 많아질수록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려 하기 마련이다. 기법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이 활용단계에서 저하될 가능성이 높으며, 활동 자체가 감소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선활동을 위한 전체 자원(기부금, 자선활동 등)의 파이 자체가 감소해서는 효율이 올라봐야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방식 자체의 효율성과 실행자의 의지에 따른 저해요소 사이의 밸런스를 조정해줄 대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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