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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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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4,912회 작성일 17-03-0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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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보수의 가치

로저 스크러튼 저



    보수라는 단어가 그 어느 때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보수라는 단어를 ‘보전하여 지킴.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이라고 풀이하지만, 현실에서는 오로지 기득권과 이권만을 쫓아다니며 도덕과 원칙까지 내팽개치는 기회주의자들이 ‘보수’를 참칭하고 있을 뿐이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들은 스스로를 보수라 자칭하며, 최근 성황리에 막을 (거의) 내린 한 편의 막장 드라마로써 한국의 보수주의를 말끔히 죽여 버렸다. 소중한 전통과 유산,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보수의 원칙과 신념이 이제 대한민국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보수주의자다. 한 때는 부분적 진보주의자라거나 수정주의자 혹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라 하며 (특히 상대와의 언쟁이 불필요하다 생각했을 때) 진흙탕 속 미꾸라지 같은 입장을 취해왔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확실하다.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하면 종이가 변색되고 활자가 세로로 떨어지는 옛날 책을 보는 것처럼 나를 아주 기이하고 생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태극기를 펄럭이며 거리를 종횡무진 하는 소위 ‘꼴통’이라 불리는 그 들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최근 정세에 힘입어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앞뒤가 꽉 막혔어?’라는 소리 없는 비난을 들어 마땅한 요즘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전통이란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이고, 가족이란 단위는 절대 흔들려서도 통제를 받아서도 안 되는, 사회의 세포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또한 사유재산제가 보장되며 이를 더욱 가꾸고 보전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비롯한 어떠한 개인의 활동도 그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라야한다는 것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동성애, 사교육, 빈부의 격차, 복지, 이민, 난민 수용, 국가적 갈등, 종교 등 인류가 직면한 모든 문제들의 가치 판단에 있어서 보수주의는 엄존한다. 어딘가 모르게 답답해 보이는 보수주의가 아직도 건재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대단한 이유는 "보수주의는 모든 성숙한 사람들이 선뜻 공감할 수 있는 생각, 즉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파괴되지만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한 점은 보수주의자들의 나태함에 있다.

 

"보수주의자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지적 보수주의자는 드물다."

 

    보수주의는 그들 스스로 지나치게 안일하게 있었던 나머지 다른 진보적 사상가들로부터 반동적이고, 편향적이고,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취급을 쉽게 받게 된다. 어떻게 그토록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동성 결혼 옹호론에 찬성하게 되었는지 자문해볼 때, 우리는 저러한 취급들이 얼마나 정치인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주저하는 낌새를 조금이라도 풍기면 누군가는 그에게 '동성애 혐오가' 내지는 ‘반인륜적 시대 역행자’의 덫을 씌울 것이고,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게 될 것이다. 잃을 게 전혀 없는 사람은 이 문제를 과감히 다룰 수 있겠지만, 정치인들은 잃을 게 전혀 없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은 적자생존이라는 자유경쟁체제 속 불변의 진리를 (그릇되게) 추구하며, 보수의 탈을 쓰고 기회주의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저자가 합리적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로 내세운 건 자유와 책임이다. 우리 뜻대로 살 수 있는 기회, 고충에 응답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공정한 법의 확실성, 특정 이해 당사자들 마음대로 점유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공유 자산인 환경의 보호, 개방적이고 탐구적인 문화, 대표자를 선출하고 법을 통과시키는 민주적 절차 등을 자유의 가치로 꼭 갖추어야하며, 이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지칭된다. 합리적 보수주의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잘 지켜 후대에 물려주려는 신념을 갖는다. 또한 약자를 보호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연대의식을 잊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 세운 원칙을 절대 어기지 않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는 정치적 이념을 떠나 일상의 철학이다. 정치 선진국 영국이 200년 넘게 보수와 진보 양당 체제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양측의 철학이 서로에게도 최소한 납득할 만 하다는 것에 있다. 보수의 합리적인 원칙과 신념을 진보도 인정할 만 하는 것이다.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만 새로움을 쉽게 선택하지는 않는다. 진보적인 것, 발전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기존의 것들 중에 아주 중추적인 부분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중한 부분들이 흔들리고 다른 사람이나 체제에 의해 통제되는 것은 고통스럽다. 변화와 질서, 그리고 개혁과 전통, 어쩌면 공존할 수 없는 영역 둘의 교집합으로 나는 나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이념의 대립 속에서 건강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체재 속에서 상대의 원칙과 철학이 납득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꼭 가슴에 품겠다. 소위 꼴통이 아닌 한 명의 사상가 혹은 이념가로써의 대우를 받기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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