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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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 백성이 먹을 빵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대답한 지체 높으신 왕자의 무지몽매함에 대해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쟝 쟈크 루소, 고백록
쟝 쟈크 루소가 고백록을 쓰던 당시 프랑스 공주였던 마리 앙트와네트가 말했던 케이크는 예상할 수 있듯이 당시 매우 호사스러운 음식이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지금 케이크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어 제 5식품군에 들어 있다. 반드시 먹어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호사 취미를 만족시키는 식도락용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비문화와 물질문명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앙트와네트가 향유했던 호사스러운 것들을 더 누리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혁명이 아니라, 케이크처럼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혁명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고급품에 대한 소비 규모가 전체 대비 4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대부분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만 보더라도 집이 아무리 어려워도 흔히 말하는 보세 신발을 신으려 하지 않고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만을 구매하는 현상은 다시 여겨보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놀라운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분수를 모르는 허영과 사치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놀라운 현상이 이제는 우리 모두를 ‘명품을 소비하는 대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 계층의 구성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의 종교, 정치적 견해, 가치관이 아닌 그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의 브랜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실제적인 별 효용성 없는 물건들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며 명품과 사치품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물건들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 주기도 하지만, 상대적인 빈곤감으로 인한 좌절감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나는 나 혼자 있을 때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이 살아가지만, 친구가 고급 승용차를 샀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어보는 현상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나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있기 때문에 친구의 상대적인 우월감도 있는 것이다.
과거의 사치품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여유가 있어서 치장을 하고 다니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되었으며,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의 분위기는 그와 사뭇 다르게, 가진 것을 드러내는 풍토가 만연해 있으며 소비는 시원시원하게 하는 것이 지향해야 할 멋진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여자 친구 앞에서 시원시원하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비싼 음식을 계산했던 경험은 대부분 남자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중류층 사람들마저도 상당 수준의 물질적인 만족감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문화이다. 이렇듯 생산의 문화는 소비의 문화로, 저축의 문화는 현재를 즐기는 문화로, 건강은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열심히 일하던 근로의 문화는 건강을 위해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문화로 바뀌었다. 내가 무엇을 생산해 내는가보다는, 뭘 사들이는가가 더 중요한 문화가 되었으므로 호사스러움은 더 이상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 생필품 같은 것이 되었다.
명품과 사치품을 사용할 때 제품의 효용과는 상관없이 쾌감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소비 행위를 통해 스스로 힘을 느끼거나, 중독되며 정복감을 갖게 된다. 명품을 소비하는 주체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고려해봐야 할 지점이다. 나의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현재는 과소비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물건을 쓰지 못하는 것은 수치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갖거나,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경멸하지 않아도 그 아이에게 baby gap의 제품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질 낮은 옷을 입히면 경멸의 시선으로 쳐다본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편의 수입과 소비에 따라 여성의 성생활에 있어서의 만족도가 비례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소비 행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이렇듯 우리 삶에서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철학서간’으로 미루어 보건데, 볼테르는 아마 편견 없는 진보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18세기에 이미 오늘날 우리가 기피하거나 받아들이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취향의 사회화’에 대한 명제를 꿰뚫고 있다. 우리는 늘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히 생겨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호사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욕구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늘 호사품을 사용해왔다. 인간은 호사품을 필요로 한다. 호사품이 없었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잡초나 약탈자라는 말이 피해를 입는 쪽의 시각만 반영하는 것처럼 호사품 역시 우리가 어떤 것을 호사품이라고 부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거의 예외 없이 대부분 호사품이 다음 세대에게는 생필품으로 변한다. 단추, 유리창, 과즙, 문 손잡이, 베개, 거울, 우산 이 모든 것은 과거에 호사품이었으나 지금은 저 중 어떤 것이라도 집에 없다면 가난의 상징이 될 것이다.
경제원론적 시각에서 본 호사는 어떤 것일까? 좋든 싫든 자본주의는 호사품을 생필품으로 변화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한 때는 몇몇만이 쓸 수 있던 것을 대량 생산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복지 사회를 만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확실한 건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확실하다. 부자들이 먼저 호사품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이를 보다 쉽게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예는 너무나도 많다. 전자렌지, 항생제, 냉장고, 에어컨, 스마트폰, 비행기 여행 등 처음에는 사치이고 과소비로 지탄받았던 것들이, 처음 호사품을 구매한 사람들 덕분에, 점점 낮은 가격으로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너무나도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필수적인 소비 품목이 된 것이다.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라면 너무나도 많이 듣게 되는 무어의 법칙은,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나는 그것을 원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이라는 행동 특성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 바로 그런 현상들 덕분에 대다수 사람들이 고용량의 고속도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덕을 본다.
나는 과거에 언젠가 세계적인 복싱 스타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사치스러운 삶을 SNS에 올려놓은 것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 이면에는 사실, 메이웨더의 허영심과 필요 이상으로의 호사로움을 누리는 모습이 내심 부럽고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메이웨더와 비슷하게 세계의 여러 슈퍼스타들이 자신들의 소비를 인터넷을 통해 자랑하는 것을 볼 때 마다, 또 그러한 스타들을 보고 값비싼 제품에 대한 소비를 줄곧 자랑하는 일반인을 보면서, 그것들에 대한 나의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제는 그러한 끝없는 과소비를 보며, 나 또한 부자가 되어 저들과 같은 소비문화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경험에만 비추어보더라도 사치품에 대한 빈번한 노출은, 사치품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드는 생각은, 부자들의 끝없는 욕심과 그 욕심에 대한 실현이, 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상대적인 불평등이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에 상당히 거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말이 사실이란 것에 부정할 수 없고 이미 이러한 현상은 도덕적 가치로 따져서 올바르다 그렇지 않다를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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