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탄생 : 근대 유럽을 만든 좌우익 혁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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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탄생 : 근대 유럽을 만든 좌우익 혁명들 - 데이비드 파커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일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경,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재소장 대행이 위와 같은 발표를 했을 때 박근혜는 대통령에서 파면되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박근혜의 정치적 인생은 여기까지인 것이다. 현재는 구속기소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 되어 있으니, 인생이 “천당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유혈사태 없이 정권을 끌어내렸다고 하여 영국의 “명예 혁명”에 비유하곤 하는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적절한 비유인 듯하다. 영국의 명예 혁명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단편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국왕 제임스 2세가 의회의 요청을 받은 네덜란드 오라녜 빌렘 공(제임스 2세의 사위)이 상륙하자 프랑스로 망명하고, 제임스 2세의 첫째 딸인 메리 여왕과 함께 의회에게 통치권을 양도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가톨릭 교도였던 제임스 2세는 아들이 없고 딸만 둘이 있었는데, 두 딸은 모두 성공회 신자들이어서 의회에서는 제임스 2세가 죽으면 가톨릭 왕조는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제임스 2세가 50이 넘어서 늦둥이 아들을 봤고, 가톨릭 왕조에 기겁을 한 의회는 제임스 2세를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 의회는 청교도와 성공회 신자가 대부분이었고, 왕당파인 (현재로 치면 여당) 토리당에서도 잔뜩 경계했을 정도였다. 이런 반발을 찍어 누르고자 제임스 2세는 섬나라 영국에서 육군 친위부대를 양성하기 시작하였고, 의회는 격렬하게 반발하여 제임스 2세의 맏딸인 메리 2세에게 남편 네덜란드 오라녜 빌렘 공의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을 요청했다. 결국 제임스 2세는 런던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망명하여 복위를 노리며 투쟁을 벌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왕이 된 빌렘 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의회에서 권리장전(權利章典)을 요구했고, 이를 승인하여 입헌군주체제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이라고 하긴 했으나 왕에 맞서 귀족과 젠트리의 이권을 보장한 측면이 강하다. 즉, 기득권 끼리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혁명은 일종의 미사여구일 뿐이고, 실제로 인민의 주권이나 저항권에 따른 획기적 변화가 아닌, 그냥 제임스 2세가 물러나서 빈 왕좌에 다른 사람이 와서 앉는 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의회는 왕을 갈아치우고 이권을 차지하자마자 밥그릇을 지키려고 선거권을 동결하고, 빼앗고 안정적으로 물려주기를 일삼았다. 그리고 훗날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자 우리는 평화롭게 혁명했지 피분수를 일으킨 프랑스와는 다르다는 선전을 덧붙인다.
가만히 이번 탄핵 사건을 살피면 무혈 혁명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기 보다는 권력자들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물이라는 성격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국회를 견제하고자 박근혜는 친박세력을 국회내에서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에 반발한 야당과 여당내 비박 세력들이 결집하여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켜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용하여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결국 박근혜에 대한 탄핵도 국민들이 직접 심판했다기 보다는 국회와 국민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성사되었다고 본다. 밑바탕에는 지난 총선을 야당의 승리로 이끈 국민들의 투표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상세히 보도한 언론 및 탄핵에 대한 전 국민의 열망과 여론이 있었지만, 결국 국회와 행정부의 밥그릇 싸움에 이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느낌의 근거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을 대선과 동시에 진행하자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친박세력 뿐만이 아니라 과거 야당에서도 일부 나오고 있는 사실이다. 표면상으로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으니 이를 분산시켜 이원집정부제 같은 분산형 권력구조로 개편해야 한다고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지적하였듯이 “용이 되지 못하는 이무기들이 권력을 조금이라도 맛보고자 하는 정치적인 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짧은 시간에 국민적인 논의와 투표 및 여론조사도 없이 무슨 개헌을 논의하겠는가? 벌써부터 사라진 권력을 노리고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 정치인을 보면, 목청이 터져라 외쳐 권력을 끌어내리는 것은 국민이고, 그 열매를 따 먹는 것은 국민을 등에 업고 정의로운 척 하는 여의도의 정치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대혁명도 한순간에 부르봉 왕가를 뒤엎고 공화정을 탄생시켰으나, 혁명의 주체들이 권력에 맛을 들이고 초심을 잃기 시작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서 나폴레옹의 제국 수립, 부르왕-오를레앙 왕정 복고,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와 몰락을 거쳐서 결국 대혁명 100년 뒤에 제대로 된 공화정이 성립되어 주권이 완전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혁명은 권력자들끼리 투쟁에서 승리한 쪽이 보기 좋으라고 붙인 수식어 일 뿐이다. 이런 혁명이라는 말이 허울뿐인 말이 되지 않으려면 권력자들이 국민의 눈치를 보고 언제든지 권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고 투표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국민소환제가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고는 행정부와 국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선거철에만 표를 구걸하고 당선이후 입을 싹 씻고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많아서 반쪽짜리 투표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 개헌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내용 하나도 없이 자기들끼리 나눠먹기식 권력 분산안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홍보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물론 눈치빠른 대다수 국민들은 반대하고 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요지는 국민들의 권력자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이다.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지면 제 2의, 3의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여 국가를 혼란으로 몰고 갈 것이다. 옆나라 일본이 참 좋은 예시가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낮은 정치적 관심도와 의원들의 지역구 물려받기를 통하여 국가 전체가 우경화되어, 과거 일본 제국 시절 군국주의와 전체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성숙한 시민의식과 저널리즘이 없는 견제와 감시는 현재 미국이나 아랍의 봄 같은 꼴이 날 수도 있다. 이 피를 흘리지 않은 시민 혁명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그를 뒷받침 할 제도와 시민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기나긴 싸움이 될 것이다.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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