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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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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524회 작성일 17-04-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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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

영화감독 김광수, 필명 김조광수 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책을 읽어보려 마음먹었던 이유는, 얼마전 직접 겪은 신기하고도 색다른 경험 때문이다. 밤 늦게 퇴근을 하고 친한 형들과 나는 늦은 저녁을 먹으며 가볍게 맥주 한잔을 곁들이기 위해 학교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통닭집에 갔다. 치킨집이 아니라 굳이 통닭집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그 집은 닭에 튀김옷을 잔뜩 입혀 튀겨내지 않고 연탄불에 은은히 구워내는 어쩌면 조금은 전통적(?)인 조리법을 몇 년째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별난 조리법 때문일까 우리는 가게내부로 자욱하게 깔렸지만 그리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뿌연 연기를 뚫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고르던 찰나 다른 곳에 있다가 합류해 이미 거나하게 취한 한 형이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다며, 옆 피자가게에 피자를 포장해와서 통닭과 함께 먹자하였다. 무엇때문인지 평소에는 묵살되었을 그 의견은 삽시간에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고 막내인 나는 그새 자리에서 떠밀리다시피 일어났다. 분명 독특한 요리철학때문일 것이라 혼자 생각하며 나는, 머리에 한 가닥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 과하게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사장님께 다가가 조심스레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밝게 웃으시며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기 보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잘생기고 매너까지 있네 어쩜! 걱정말고 가져와서 먹어. 우리 먹을 것 많으니까 한줘도돼. 피자는 괜찮으니까 그거 다 먹고 우리 따로 잠깐만 보면 안될까?’라고 했다. 어색한 웃음을 크게 지어보이며 출입문을 나온 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처음 딱 떠오르는 생각 하나말고는 아무리 다른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려해도 그 말의 의미는 하나였다. 당황스러웠고 어쩔줄 몰랐고 나의 성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스스로 검토과정을 거친후 무거운 발걸음을 떼내었다.

 

   솔직히 이 글을 그 사장님이 혹여나 보게 될까봐 무섭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어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이정도로 순화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의 태도 역시 이정도로 개방적이고 사회에 잘 녹아들었는지에 대해 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의 저자 김조광수는 최근 의뢰인, 조선명탐정 등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의 탄생을 총 지휘한 경력이 있는 뛰어난 영화감독이다. 그는 얼마전 사회적 커밍아웃을 통해 본인이 이반(이성애자들을 ‘일반一般’으로 일컫는 것과 구별해서 한국의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말로, 한자로는 ‘異般’ 또는 ‘二般’이라고 쓴다)임을 밝혔다. 그의 작품사상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 중 첫 번째는 우리 사회에도 행복한 이반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일반들이 이반의 삶과 사랑을 대할 때 그들의 어두운 현실을 보면서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고 한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동성애자들의 삶은 차별과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동성애자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시각을 가진 관객은 이들과 함께 슬퍼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이런 패턴을 깨어 그는 이반들을 바라보는 일반들의 온정주의적 시선을 변화하고자 노력한다.

 

   참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으로 약자라는 그룹에 속해있는 그들을 자칫하면 비판하는 꼴이 될 수 있는데, 약자라는 것이 그 수가 단지 적기 때문일수도 있고 공통의 생활관습과 도덕 혹은 종교에 벗어나는 행동과 생각 때문에 배제 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내가 겪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이질감에 비롯되는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말하기 앞서 먼저 그들의 생각과 생활에 관심을 가져보자며 이 책을 읽어본 것은 좋은 판단이었던 듯 싶다. 김조광수, 그의 삶에서 그의 성정체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삶을 찬찬히 읽어내는 동안 성소수자에 대한 관음적인 호기심과 막연한 경외심은 어느 새 사라지고 인간 김조광수에 대한 관심만 남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위치가 되었던 머리로 재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살아온 듯하다. 학교생활, 대학생활, 군생활 등 환경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온 김조광수의 삶에 대한 열정에 놀란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그가 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할 때는 조직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모습에서는 또 극우주의자들의 과격한 단면이 보인다. 그의 대학생활은 우리나라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386세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자유로운 대학생활에선 경직되고 교조적인 학생운동권들의 분위기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도 철처하게 외면했으면서도 억압적인 군생활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김광수 감독(필명 김조광수)에게 밝고 쾌활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명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기질도 한 몫 하지만 본질적으로 굴절되지 않고 표리가 일체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장애인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성소수자로 억압받고 상처입은 모습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자칫하면 성소수자들의 상처들이 성공한 게이를 통해 외피를 두르고 포장되어 미화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스크린과 언론에서 자주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은 고쳐야 하는 질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김조광수 이전에도 커밍아웃을 한 연예인들이 몇 있었다. 한 명은 따가운 지탄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방송에 출현하지 못했다면 다른 한 명은 광고를 통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최초로 법적인 여성이 되어 결혼도 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비단 연예인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거나 고통받으면서도 누구에게 속 시원히 털어 놓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는 동거든, 생활동반자든, 동성결혼이든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가할 권리가 없다. 그들에게는 그럴 선택의 자유가 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삶을 누리는 것과 자신들의 특별한 삶의 형태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매일 같이 현란한 복장으로 거리를 나돌아다니며 보는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우리를 인정해달라’는 내용의 퍼레이드들이 일반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경외심과 배척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권리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누군가는 필요한 희생을 하면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

“이 나라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안 될 거야. 영영 불가능한 얘기야.”

나는 갑자기 오기가 생겨 말했다.

“그럼 저부터라도 싸울래요.”

p. 202에서 발췌

 

   어쩌면 그 통닭집 사장님도 혼자 외롭게 싸우고 있을지 모른다. 혹시 경험했을 과거의 아픔들을 딛고 수년간 항상 밝은 얼굴로 손님들을 저만의 살가운 방식으로 대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혹독한 사회에 녹아들어가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민반응을 했을 나로인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그 사장님이 걱정되거나 미안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나 뿐 아니라 모든 내 또래 사람들이 당연히 흠칫할 수 있는 그런 상황들에 우리 모두가 아직은 너무나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그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열정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그 통닭집 문을 힘차게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단둘이 따로 보는것은 어전히 꺼려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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