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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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앞이 깜깜하다. 눈앞이 깜깜한 이의 세계의 미래는 깜깜하다. 선천적 시각 장애로 인해 밝은 세계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의 마음 속 어두움은 눈앞의 실재보다 그 농도가 더 진하다.
적막하다. 무음의 세계 속 존재는 그의 소리조차 듣지 못한다. 채권자처럼 시시각각 덮치려고 노려보는 공포의 옷자락을 눌러, 마음의 세계를 지키게 해주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글을 쓰려고 시각과 청각 장애를 지닌 삶을 잠시나마 그려본 나의 머릿속도 깜깜하다.
영화 블랙은 우리나라에서 전래동화처럼 구전되어 내려오는 헬렌켈러의 이야기다. 도입과 절정, 결말을 모두 아는 줄거리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소녀가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선생님을 만나 교육을 받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는 내용의 뻔한 내용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뻔하고 정확히 예측한대로만 흘러간다. 이렇게 반전 하나 없이 흥미가 떨어지는 내용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09년도에 처음 봤을 때의 기억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 이들의 눈가가 촉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뻔한 스토리는 영화를 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와 절망만 하는 본인의 인생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더욱 더 실감나게 인지하게 해준다. 아마 감독은 영화의 반전을 스토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다 본 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려 한 것 같다.
영화 속 미셸에게 사하이 선생님은 알파벳을 순서대로 가르치는 대신 B. L. A. C. K. 을 가장 먼저 가르친다. 미셸에게 스스로의 삶을 정확히 인식하고,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서 삶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 어린 나이의 통제 불가능한 아이에게 참 가혹한 첫 교육이다. 그러나 미셸에게 가혹한 것이 그녀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사하이 선생님이 오기 전 미셸은 부모도 교육을 포기했을 정도로 통제가 안됐으며 본능 덩어리, 그 자체로서의 삶을 살았다. 사하이 선생님은 아주 천천히 미셸에게 글자를 알려주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희미한 불빛이라도 어둠속에서는 온 집안을 순식간에 밝히고 소량의 검정 물감은 투명한 물을 회색으로 만들기 충분하듯, 길고 긴 제자리걸음과 같은 교육 끝에 도둑같이 온 깨달음은 그녀의 삶을 부지불식간에 변화시켰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검은색은 어둠과 갑갑함뿐만 아니라, 성취의 색이고 지식의 색이고 그리고 졸업 가운의 색이라고......
깃발
청마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폿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영화 블랙을 보며 나는 위 시가 계속 생각났다. 나에게 미셸은 깃발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상향을 향해 끊임없이 흩날리는 깃발이 아니라 이리저리 마음대로 격동하는 깃발이다. 사하이 선생님은 먼저 미셸에게 비극적인 현실을 인정시키고, 세상을 인지할 수 있는 기본권을 건넴으로서 깃발의 움직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지속적인 헌신으로 그녀에게 희망의 존재를 알려 깃발이 한 곳을 향해 빛도 소리도 없지만 아우성을 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옆에서 깃발의 박혀있는 모래를 한 줌 한 줌 옆으로 퍼주었다. 시에서의 깃발은 동경하는 이상향에 끝끝내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하지만 미셸은 조력자의 도움으로 이상향에 도달하였다. 무질서와 포기의 검정 세상에서 질서와 노력을 통한 성취의 검정 세상으로의 이동을 실현시킨 미셸과 그녀보다 더 지극한 노력을 기울인 사하이 선생님에게 존경을 표한다.
덧붙여, 미셸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건강한 신체를 가진 아이가 태어남에 감사한다. 사하이 선생님과 같이 기적적인 교육을 하진 못할지 모르지만 그에 못지않은 사랑으로 아이를 교육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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