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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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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윤
댓글 0건 조회 5,731회 작성일 17-04-3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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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은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한 폭력은 그 수준에 상관없이 우리가 지양해야 할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모습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너무 이상적인 말은 아닌 걸까? 우리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자. 학급 내에 키가 크고 덩치도 큰 싸움 잘하는 무서운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으로써 내가 남보다 힘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의 안락함을 위해 그것을 적극 활용하려 하는 본성이 있다. 문제는 나의 안락함이 다른 학급 대다수 친구들에게는 피해가 될 때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약간의 피해가 생겼을 때, 덩치 큰 그 친구에게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되도록 수긍하고 살아간다. 강자에게 강한 모습을 닮기 위해 한 학생이 싸움 잘하는 학생에게 큰소리를 쳤을 경우, 열에 아홉은 실컷 두들겨 맞고 쌍코피를 흘린 채 놀림거리가 된다.

 

직업은 강력계 형사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 딱 그 시대의 보통 가장이었던 성진은 다리가 아픈 초등학생 아들이 또래 친구들에게 맞고 놀림 당하는 모습을 보며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왜 ‘병신같이 가만히 있냐.’고 아들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아들은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난다.’라고 대답하고 성진은 큰 충격을 받는다. 성진은 아들에게 ‘그럴 땐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로 돌려줘라’라며 내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라고 강요한다.

 

성진은 정말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연쇄살인 사건을 맡게 되고 수사가 쉽지 않게 흘러가자 엉뚱한 시민을 범인으로 자백하게 만들라는 안기부의 지시를 받게 된다. 안기부는 성진에게 차, 여자, 돈, 그리고 아들 다리 수술까지 해주며 확실하게 일처리 할 것을 강요하고 성진은 잠깐 고민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말을 잘 들으면 생기는 보상을 이기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런 죄도 없는 조금 부족한 남성을 잡아다가 온갖 ‘폭행’을 해가며 거짓 자백을 받아내고 호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자신의 오랜 친구가 안기부의 행각을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고발하려다가 죽임을 당한다. 성진은 큰 충격에 빠져 안기부의 행각을 본인이 직접 언론에 고발하고 자신 또한 죗값을 치를 준비를 하지만 국가를 상대로 일개 형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결국 성진은 부인을 죽인 북측에서 지시를 받은 종북 세력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성진의 아들이 친구들에게 맞으면서 가만히 있는 모습은, 성진이 안기부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았음에도 거절하지 못하는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강자의 행패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개의 경우 더 큰 폭행을 당하거나, 성진처럼 매장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한 앞으로 살아가면서 성진과 비슷한 경우에 놓일 일이 많을 것이다. 부당한 것에는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가? 말은 쉽다. 매번 부당한 것에 정면으로 맞섰다가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게 되며,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당한 것일지라도 강자의 요구이면 항상 굴복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우리가 윤리적으로 추구하는 지향점과 정반대이다. 더불어 강자의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면, 내가 강자가 되었을 때 약자들에게 행하는 폭력 역시 정당화 시키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나는 외국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확신을 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가 겪은 역사와 거의 모든 남자들이 다녀오게 되는 군대에서의 문화 때문에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머리로 ‘강자일지라도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것은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모순적이게도, ‘막내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참아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공존한다. 실제로 군대에서 내가 이등병, 일병 시절에는 선임들의 부당한 요구에 속으로 많은 불만을 가졌었지만, 내가 상병, 병장이 되고 보니 이등병, 일병들의 행동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기에, 상황에 따라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강자의 행패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은 어렵다. 내가 할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에게 강요해서도 아니 된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국가의 횡포에 맞서 희생하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직 부족할 지라도 현재의 자유민주주의가 있으며, 외세로부터의 침략에 목숨 걸고 싸운 용사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살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강자의 폭력에 매번 대항할 수는 없다. 그런 보통사람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희생을 감수하고도 맞서는 사람들에게는 존경을 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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