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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디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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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민
댓글 0건 조회 5,703회 작성일 17-05-0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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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디 브라운

 

 “비극의 역사는 신세계 사람들에게 인디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황금에 대한 탐욕은 지금의 강대국인 미국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잔인한 역사는 디 브라운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미국 백인의 강자의 시선에서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였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왕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유순해서, 전하께 맹세하오니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나은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며, 말은 부드럽고 상냥할 뿐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벌거벗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훌륭합니다.” 유럽인들은 이들의 유순함이 미개함와 나약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여 유럽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했고 기독교 세례를 받게 했다. 세례를 받은 직후 한명이 죽게 되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인디언을 천당에 들어가게 했다고 즐거워했으며, 서인도 제도에 퍼뜨렸다. 유럽인들 시선에선 인디언들은 동일한 인간이기 보다는 새로운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친철한 동물에 가까웠다. 콜럼버스가 새로운 땅을 개척한 이후 30년동안 인디언들에게는 처절한 싸움의 시간이었고, 그 이후 인디언들은 거의 죽었다.

 

 자료로 남은 인디언의 역사는 짧고 단순했다. 인디언들은 다양한 부족이 있었고 인구의 수도 지금의 살아남은 인디언보다 휠씬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는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끝이었다. 부에 눈이 먼 유럽인들은 신대륙으로 이동했고 친절을 베풀며 자신의 영역에서 부족함과 욕심없이 살던 인디언들을 몰아냈다. 저항하는 인디언들은 백인들의 월등한 무기에 쉽게 죽임을 당했다. 백인들의 강력한 무기앞에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 백인들과 타협한 추장들은 새로운 땅으로 이주를 하지만 실상은 인디언 경계 구역을 만들어 계속되는 백인들의 탐욕에 쫓겨서 치욕적으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영구적으로 인디언 경계선을 침범하기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말을 만들어 유럽인과 그 후손들이 신대륙을 다스려야 한다는 운명을 강조하며 탐욕을 간접적으로 나마 숨겼다. 하지만, 지금 보면 강자에 의해 약자의 모든 것을 빼앗는 상황을 백인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디언의 편에서 인디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던 백인도 있었다. 인디언 소탕전문가로 알려진 크룩장군은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면 인물이었다. 하지만 10여년간 인디언들과 싸우면서 인디언들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디언편에 서게 된다. 인디언을 위해 개혁을 주장했으며 그들에게 자유롭게 농사와 집을 짓게 하였고 인디언들을 대화로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룩장군 이외에도 몇몇 백인들은 인디언을 미개한 인간이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한 백인들이 있어서 인디언들에게 짧지만 평화의 시간이 있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평화는 그들을 피에 굶주린 야만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아파치의 신뢰를 얻은 두 백인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지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를 오래가지 못했다. 인디언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한 사람은 소수였기에 백인들에게 미개하고 개화의 대상이었 인디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부족을 이 세상에 살도록 내보냈다고 생각했었소, 그러나 잘못 생각한 것이었소.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을 백인들에게 내주려는 것이었고, 우리는 죽어야하는 거였소.”

“나도 하나의 사람일 뿐이다. 나는 부족의 목소리이다. 그들의 마음을 나는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들은 나에게 백인의 권리를 거부한다. 내 피부는 붉지만 심장은 백인과 똑같다.”

 

 저항한 인디언이나 투항한 인디언 모두가 유럽인들의 강력한 힘 앞에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멸망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볼 수 있었다. 당시는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해야한다는 주장이 있을 때 였지만 인디언들은 아무렇지 않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백인들보다 더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유럽인들인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만이 높은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인디언들을 미개인으로 만들어서 멸망하게 한 것을 보면서, 강대국입장에서 말하는 세계화와 평화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미국의 이라크, 시리아에 대한 공격이 과연 그들의 부에 대한 탐욕이 없더라도 강행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디언을 도와주었던 크룩장군처럼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차별이 아닌 인정하는 것 만으로도 예전 인디언부족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보면 도발하는 북한과 강대국인 미국의 압박이 계속 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유럽인들과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하는 인디언들의 대치상황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강대국인 미국과 함께 북한을 억압해야하는 것이 옳은 것 일까. 무력적인 방법보다는 대화로 충분히 많은 길이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한민족간의 인식 차이가 더 커지기 전에 무력으로 대치하는 상황보다는 과연 우리가 북한주민을 과거의 유럽인들과 달리 그들을 차별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지 고민을 할 때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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