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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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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675회 작성일 17-05-04 00:06

본문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 투명사회 중 -

 

 흔히들 현재의 우리나라를 불신의 사회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는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미래를 신뢰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은 기업을 신뢰하지 않고, 가족들도 친구들도 서로를 온전하게 신뢰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뉴스를 통해 접하는 국가 기관 내 비리 문제와 기업들을 불법적인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 사회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이렇듯 신뢰가 무너지고 도덕이 무너져버린 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결국 객관적인 정보와 사실을 원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투명성을 요구하게 된 것은 무너진 사회의 신뢰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사회가 선택한 투명성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온전한 투명성이 보장된 사회란 마치 스스로 자신의 집 대문을 열고 모든 이에게 출입을 허용하는 사람과 같다. 그 문이 열린 의지가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집의 대문이 열리고 외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다면 집 주인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부끄러워할 만한 물건들은 숨기고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집의 디자인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것으로 바꿀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집들이 내용을 공개하게 된다면 결국 모든 집들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무난한 디자인과 무난한 내용물로 획일화 될 것이다. 투명성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집들을 감시하고 획일화 시키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투명성을 요구할 수록 사람은 자유와 개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메신저에 올린 자신의 사진을 모두가 본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진을 모두가 만족시킬 수준으로 고칠 것이고, 기업의 제품 개발 과정이 모두 공개된다면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제품보다 전부터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오던 제품이 나오게 될 것이며, 나라의 정책 집결 과정이 국민들에게 공개된다면 지식인들의 토론과 협의를 거쳐서 만들어진 정책보단 단순히 대다수의 국민을 만족시킬 자극적인 정책들만 통과될 것이다. 


 그러면서 모두들 외부의 시선과 타인의 의견에만 신경을 쓰면서 정작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눌러버리고, 경쟁력 없는 다 획일화된 삶을 지양하게 된다. 모든 이성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얼굴로 성형을 하고, 기업의 만족을 위해서 의미도 없이 다들 따는 자격증을 따고, 도덕을 위한 투명성이 아닌 도덕을 대체하는 투명성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그룹이든 가지고 있는 추악한 민낯을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투명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사회에 팽배한 야합과 비리를 없애기 위해서 개인과 기업, 정부는 어느정도의 투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투명성은 제한적일 필요가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고, 기업의 사업 전략을 존중하며, 정부의 정책의 유출을 막기 위해 무한적인 투명성은 거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명성이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유혹은 일부가 아닌 전부를 원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으면 공개를 안한 것과 같다는 입장을 우리가 지속적으로 취한다면,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투명성이 이끌어내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리 사회가 받게 될 것이다.


"신뢰는 오직 지와 무지의 중간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신뢰는 타인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와 긍정적 관계를 맺게 한다. 

신뢰는 무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내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신뢰란 것은 아예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 투명사회 중 -


 미국에는 수 많은 대통령들이 위인으로 불리우며 존경 받고 있다. 이에 대비해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 범국민적으로 위인이라 불릴만한 정치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오랜 수탈의 역사를 통해 백성들을 버리는 지배자들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지배자를 불신하는 분위기가 현재 우리 사회에 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로인해 우리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국민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엄격한 투명성의 잣대를 요구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정치인들을 우리가 신뢰하고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정치인 뿐 아니라 기업인에게도, 정신적 스승이나 종교적 지도자에게도, 가깝게는 부모나 친구들에게도 우리는 어쩌면 과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오랜 격언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기 위해서는 굳이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나만의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 시대의 무너진 도덕을 포기하고 스스로 기계화된 투명 사회의 부품이 되고자 하는 것보다, 나는 사회의 무너진 도덕을 다시 세우고 신뢰가 조금씩 회복되는 세상을 더 꿈꾸고 싶다. 나의 속한 자리에서부터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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