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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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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898회 작성일 17-05-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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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이규섭


 사람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 각자가 본인의 의도에 따라 세상을 투영하여 바라보기 때문에, 혹여나 세상이 변하지 않고 있어도 매 순간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이다가도 그렇지 않을 때는 시궁창처럼만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저 좋을 때는 뭔가 싶을 정도로 주위 신경도 안쓰고 하하호호 거리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저 혼자 분위기를 푹 가라앉혀서는 이사람 저사람 푹푹 찌르고 다니는 사람이 지천에 있는걸 보면 분명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청춘이라는 말이 뿜어내는 찬란한 빛과는 다르게 그 시기를 방황하는 이들의 눈에는 분명 세상은 어둡고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개인의 가치관을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세상은 사람이 제멋대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 주어진 상황들로 족쇄를 채워 두고서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를 불러일으키는지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간혹 올곧은 아이들은 얼마 안되는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더 극심하게 벌어지고, 이내 자기모순으로 돌아와 그동안 굳건히 쌓아온 가치관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순간 그들은 세상이 모순덩어리이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고, 가만히 있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게 아마 어른들이 칭하는 ‘사춘기’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어떤 존재가치가 있는 것일까?”라는 고민은 그래서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더 잔인한 질문이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답을 찾기 전에 현실에 녹아들어 사춘기를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일부 그 답에 집착하는 아이들은 끝없는 모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괴로움에 몸부림 칠 것이다.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며, 그래서 때때로 엇나가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인 료의 삶은 음울하다. 부모는 서로 불륜을 하다가 사이가 틀어져 집안은 최악의 상황, 형은 엉망인 집을 뛰쳐나가 사고로 중태에 빠지고, 여자 친구는 사고(자살로 생각되는)로 죽었다. 2년전 죽은 여자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사고현장을 찾은 료는 그곳에서 사고로 절벽에서 떨어지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한다. 눈을 떴을 때 료의 앞에 나타난 것은 유산으로 죽었던 누나가 살아있는, 그래서 료는 태어나지 않은 세계였다. 길에서 사키를 만나 그녀가 자신의 누나임을 알게된 료는 가슴속에 품었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를 조금씩 캐기 시작한다. 그녀는 료와는 다르게 자신감 넘치고 밝은 소녀였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문제가 사키에겐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료는 이내 깨달았다. 료로써는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왜 그녀에겐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사키의 존재로 인해 료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부정할수 없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의 행동 뿐아니라, 생각과 성격, 가치관을 비롯한 그의 모든 것이 달랐더라면 그가 그토록 원망한 모든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을. 모든 일이 엉망으로 꼬여버려 꽉 막혀버린 그의 삶의 보틀넥은 다름아닌 그 자신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이 순수한 소년은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낀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 삶의 이유를 잃은 소년이 받은 ‘망신시킬 거면 영영 안 돌아와도 된다.’는 어머니의 문자메시지는 실낱같은 삶의 의지를 단칼에 끊어 버린다. 몇 줄의 묘사 후 열린 결말이지만 나는 분명 소년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너무 또렷하게 대조되는 사키와 료의 모습은 자칫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리고 그때 우리가 깨닫게 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빗대어 보면 어느새 료의 심정에 공감하며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에 몸부림치게 된다.

 그리고 분명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 언제까지 되지도 않는 공상에 빠져 있을거야. 현실과 타협을 해야지.’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갈등을 빚는다. 어느 선에서 타협을 보아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언가 극복하거나 개선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 빨리 현실에 타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우리가 방황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올바른 균형점을 찾아야하는 것이지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서는 안된다.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하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간혹 오래 방황하는 청춘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극복하게 돕는 것이 아닌 스스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길이 막혔을 때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었을 때 방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여린 소년이 주저 앉은 것은 인생의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해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본인이 정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건 분명 따로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음울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이 괜찮은 청춘 소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마주한 아직은 여린 청춘들에게는 다그치듯 내뱉는 조언이라는 이름의 비난이나 힘내라는 식의 무의미한 응원의 말보다 절벽을 뛰어내린 작은 소년의 모습에서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더 진실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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