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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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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231회 작성일 17-02-2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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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독 사회 - 켄타로 토야마


기술 혁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인공지능, 바이오산업, 나노공학이 날이 갈수록 발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대신하고 할 수 없던 일들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사라진 일자리를 대신하여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하고, 기술혁신도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늘어 날 것이므로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과거 사례인 산업혁명을 참고해도 이런 주장은 얼핏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산업혁명 당시 기술 혁신에 의한 대량생산 기계가 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가져갔지만, 기계가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수요가 있어 자연스럽게 일자리 문제는 해소되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나아가서 기술의 무한한 발전은 인간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에서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을 살펴보면 농업의 발견과 증기기관의 발명,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이라고 볼 수 있다. 각각 식량생산, 물품생산, 데이터의 대량 연산과 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노동시간을 줄이지는 못했다. 채집과 수렵만 하면서 살던 원시 인류가 농업을 발견하면서 정착을 하게 되었고, 정착에 필요한 집, 옷, 농기구 들을 개발하면서 노동시간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농업을 통해 잉여 생산물을 비축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잉여 생산물은 모두가 골고루 나눠 가진 것이 아닌 힘있는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즉, 원시적인 부족사회가 탄생 한 것이다. 이런 부족사회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여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탄생시켰다. 시간이 흘러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이 생산되고 팔려나가면서 기존의 노동자들이 하던 일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은 존재했기 때문에 공장은 대량의 노동자를 싼 임금으로 고용했고, 소수의 공장주는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판매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 즉, 자본을 독점하는 현대 대기업의 원형이 탄생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교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서 오는 이득은 이를 제대로 활용 할 수 있는 소수에게만 집중되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원하는 정보에 접근 할 수 있고, 그곳에서 오는 이득을 누릴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구매하고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한 비용을 내야 하는데, 이런 비용은 결국 산업을 선점한 소수의 기업이나 개인에게만 흘러들어갈 뿐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자신의 비용만 지불하고 이득은 취하지 못한 채 컨텐츠만 즐기는 셈이다.

 

하지만 레이 커즈와일을 필두로 하는 호사가들은 기술적 특이점이 인간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신세계를 열어 인간이 유토피아에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사회 전반에 이득을 주었지만, 대부분의 이득은 혁신의 주체가 되는 소수에게만 돌아가고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업의 발전으로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량이 인간을 먹여 살리고 남을 정도지만, 지구 한쪽에서는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공장의 발전으로 다양한 물건이 생산되는 현 시점에서도 이런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선진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해당되지 않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도 소수의 대기업과 사업가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기술적 발전이 더해져서 생산에 더 이상 인간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다면 경제적인 이득은 기술 발전에 주체가 되는 소수에게만 돌아갈 것이고 다수는 그 혜택을 향유하지 못 할 수 있다.


인류의 발전과 풍요로운 삶을 위한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격차를 만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이런 현상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은 현재 직업의 절반을 대체해서 사람이 필요 없게 만들 것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는 이런 미래에 대비하여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스위스나 핀란드에서는 인간의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즉, 기술의 발전이 사람간의 불평등 격차를 완화하는 것이 아닌 심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만 유발하는 기술 발전은 경계해야만 하는 것일까?

 

부작용을 두려워해서 혁신을 거부한다면 정체되고 경직된 사회가 되어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그렇다고 기술발전에 뒤따라오는 사회적 부작용을 무시하다간 사회적 근간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 그렇기에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인 인간이 사회적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서 대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논의이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에는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소득 수단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소득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 할 수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단계에서는 시기상조 이지만, 선제적인 논의를 해서 기술 발전에 따른 부작용을 추후에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로봇세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제조업에서 인간의 손길이 사라지고 로봇만 남을 경우, 모든 이득은 로봇을 소유한 소수의 기업과 개인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소득 수단이 감소한 상태에서 소득을 얻어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강력한 소득 재분배를 실시하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가야 할 길은 기술 자체에서 해결법을 찾는 것이 아닌 기술을 통해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개발된 이유는 인간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간다운 삶을 도와줄 인공지능 개발 보다는 그저 산업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하여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철학자 칼 포퍼가 했던 말이 있다.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지옥을 만들어낸다.”

 

부디 앞으로의 기술 발전이 이 말을 정면으로 부정했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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