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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테의 자녀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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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4,812회 작성일 17-03-22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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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비테의 자녀교육법


 사람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어떤 면에서도 높은 위치로 올라가려면 그 사람에겐 원하는 위치에 맞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어떠한 것이든 태초의 신생아 시절엔 없었던 것 혹은 있더라도 발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어떠한 관점에선 인생 목표가 능력의 계발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성장하여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능력 계발은 오로지 개인의 목표가 되며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가치관 정립과 사고 능력이 고도화되기 이전의 성장기 시절에는 부모가 아이의 능력 계발을 책임져야한다. 본 책은 아이의 능력을 어떻게 계발시킬 수 있는지 설명한다.


 철학자 루소의 [에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한 어미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교육을 받아도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어떤 강아지는 똑똑하고 예민한데 비해 또 다른 강아지는 멍청하고 둔한데 이런 차이는 타고난 성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질, 즉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유명한 교육가 페스탈로치의 우화에는 루소의 주장과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쌍둥이 망아지 두 마리가 각각 농부와 똑똑한 사람에게 보내져 자랐다. 먼저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에게 보내진 망아지는 어릴 때부터 돈벌이에 이용돼 결국 보잘것없는 마바리가 되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에게 보내진 망아지의 운명은 매우 다르게 전개되었다. 이 말은 주인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커서 천리를 내다보는 명마가 되었다.”


페스탈로치는 선천적 재능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본 책을 저술한 칼비테는 페스탈로치의 관점에서 후천적 재능 계발을 위해 좋은 환경 속에서 Jr. 칼비테를 키웠으며, 자녀를 키우며 터득한 노하우들을 그의 가치관과 함께 이 책에 녹여내었다. 그의 교육법 중 내가 크게 공감하는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 ‘모든 훈련을 강제로 해서는 안 된다.’이다. 이 원칙은 현대의 매스컴에서도 수차례 강조했으며 누구나 쉽사리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에게 이 원칙을 지키기는 더욱 힘들어 보인다. 우리 사회는 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fast follower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며 현재는 세계 경제 10위권의 국가가 되었다. 이런 성장의 배경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압축 집약된 지식의 주입식 교육일 것이다.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우리는 선진국으로부터 생성된 이론과 지식이라면, 깊은 이해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머릿속으로 직행시켜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비판적 사고보다는 주입식 교육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며 모든 국가 교육 시스템이 지식의 강제적 주입을 주춧돌로 이루어졌다. 이로써 이루어진 한강의 기적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지식의 개척을 위한 국가로서의 시대가 도래 하였고, 그 일원들은 생각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지식의 주입과 강제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이와 향후를 위한 창의, 비판적 사고는 붙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21세기의 마지막을 함께 할 다음 세대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강제 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그들의 부모에게 있다. 


 어떻게 하면 강제 훈련을 줄일 수 있을까? 강제의 반대말은 ‘스스로’ 일 것이다. 미취학 아동의 경우 자기 자극형self motivation 교육은 말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 이행되기 어렵다. 각박한 경쟁 사회 속 현실파악이 안 된 아이는 스스로 자극시킬만한 이유가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흥미이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재미가 있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그것의 종류는 새로운 모양과 색의 시각적 자극이 될 수도 있고, 음의 높이와 같은 청각적 자극이 될 수도 있다. 흥미를 키워주기 위해, 마블 사의 여러 만화와 영화들이 전 세계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넣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게임을 통해 교육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교육을 자기 자극형으로 습득했다고 해도 갓난아기가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크게 공감한 교육법 또한 아이를 향한 부모의 태도를 나타낸다. 아이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아래 대화는 나쁜 부모와 아이의 대화가 아니라 보통 부모와 아이의 대화이다.


“아빠, 왜 태양과 달은 항상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요?”
“원래 그렇게 움직이게 돼 있어. 그런데 이게 왜 궁금한 거니?”
“그냥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이유 같은 건 없어. 옛날부터 쭉 그래 왔으니까. 넌 참 별걸 다 궁금해 하는구나.”
“그래도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얘가 자꾸 왜 이래?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뭘 자꾸 물어!”


 물론 이공계를 전공하고 있는 입장에서 위의 예를 보면 대부분이 “나는 저렇게 안 해. 제대로 설명해 줄 거야”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위의 대화는 단순 예시일 뿐, 부모가 모르는 것에 대한 대화로 본다면 대부분의 부모의 경우 상황이 비슷해 질 것이다. 그러나 대화 대상이 평등한 관계의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매몰차게 거절하지는 못한다.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라면 알아보고 대화하거나 함께 알아보는 형식을 택했을 것이다. 아이는 객관적으로 부모에 비해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하위 인격체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이는 부모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뛰어나지므로 시간 축 속의 다른 인격체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한 아이를 향한 부모의 모든 태도는 아이에게 기억된다. 강압적인 부모가 친절을 베푸는 아이를 성장시킬 확률은 희박하다. 유년기 때의 생활습관과 가정환경, 부모의 태도는 모두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부모는 아이를 본인 수준 혹은 이상의 인격체로 성장시키기 위한 책임이 어느 정도 있기에 평등한 관계 속의 대상으로 인지해야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인 사회 건설을 위해 자녀교육을 사회의 기초로 보았다. 취학 후 성장하며 자녀의 됨됨이와 능력은 한 명의 인격체로서 그의 책임으로 귀속시켜야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의 배경에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적어도 나는 그럴 생각이다. 책을 읽으며 칼비테의 가치관과 교육법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단적인 예로 성실하고 규칙을 잘 따르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이나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교육관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매료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실제로 Jr. 칼비테는 8세에 6개 국어를 터득하고 10세에 대학에 입학, 13세와 16세에 각각 철학박사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유명한 천재로 성장하였다. 새 생명으로 이 세상에 나오게 될 나의 아들에게 Jr. 칼비테와 같은 범인을 뛰어넘는 재능을 요구하지도 않고, 나에게도 그렇게 키울 만한 교육적 자산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배운 자녀 교육법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의 태도를 바꾸는 데 있는 것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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