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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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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167회 작성일 17-04-01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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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이규섭

 

  현대인의 모습은 회색으로 대변된다. 무채색이면서도 흐리멍덩한 그 빛으로 물든 세상은 그 안의 구성원마저 그 색으로 물들인다. 다름을 인정하는 다원화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무언가 다른 이물질에 예민하고, 강하게 배척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교육에 문제가 있어서,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정서를 가진 나라에 한정된 이야기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한 차별은 항상 심각한 문제였고, 훌륭한 교육 제도를 가진 나라들도 정도가 다를 뿐 역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점에서 교육과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 없다면 이런 비인간적인 행태가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 인간 본질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후루쿠라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다. 아이 앞에서 스스로 감정조절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히스테리를 부리던 선생을 의자로 내리치고는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었다고 말하거나, 우는 아기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는 동생을 위해 케익 칼에 시선이 먼저 가버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른바 비정상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목적에 부합하는 행동 이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감정의 공유에 어려움을 겪었다. 작가는 ‘감정의 공유’를 색다른 관점에서 해석했다. 감정을 공유하지 못 한다는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면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은 사람인가?

  후루쿠라는 현명했기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부속품이 되어야만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 알아챘다. 사람들은 모두가 이 사회의 부속품이 되기 위해 애썼고, 자연스레 녹아들어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름에도, 가족의 기대와 다르게 세상에 녹아들지 못했다. 의자를 든 채, 자신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째서?’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채였다. 그리고 그녀는 편의점을 만난다. 자신의 능력범위에서 문제없이 사회의 부속품이 되는 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최적임을 파악한 그녀는 그 안에 18년간이나 녹아들었고, 36살이 되었다. 정해진 업무 규율을 완전히 숙지하고, 행동거지나 처세는 아르바이트 동료들의 것을 흉내냈다. 그렇게만 하여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친구나 동료들 역시 그녀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사회에 녹아들었고,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며,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수 있었기에 그녀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완벽히 톱니바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나이는 그녀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허락하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미혼인 것도 모자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주변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의 인생만이 관심사의 전부일 그들이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그녀의 인생을 마구잡이로 품평하고, 상상하고 충고했다. 작가는 이를 ‘야단친다’고 표현했다.

  소설 속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인물은 동료 알바생 시라하 씨다. 이 남성은 전형적인 루저로 이상만 높을 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을 깔보는 태도로 행동한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째서 좋지 못한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본인도 편의점 알바생이면서 편의점 직원을 폄하하기 일쑤이고, 근무 태만에 손님과 동료 여성들을 스토킹 하다 해고를 당한다. 혼활(결혼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을 위해 알바를 시작했다는 그는 소설 내내 현대사회는 그럴듯한 가죽을 쓴 석기시대라고 주장한다. 모든 남성은 강해야 하며 그 자손을 남겨야 하며, 그런 남성에게 여성이 모이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해 제구실을 못하는 자는 사회로부터 배척될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불만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며 투덜대던 그에게 후루쿠라는 제안을 한다. 서류상으로 결혼하는 것으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게 어떻겠냐고. 그는 후루쿠라가 늙고 못생겼다고 여겼기에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세상으로부터 숨겨준다’는 조건하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정상이 아닌 그의 모습(대학을 중퇴하고, 자격증도 하나 없는. 수입도 없고, 재산도 없으며, 매력도 없고, 만나는 여자도 없는.)을 추궁하고 비난하는 세상이 두려웠던 것이다.

  흐르는 세월로 인해 더 이상 지금의 생활로는 ‘정상적인 삶’을 흉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그를 끌어들이는 것이 좋을 것만은 아님을 알면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시라하. 이로써 그녀는 혼기에 찬 여성이 남자를 만나지도 않는다는 것 지적에 당할 필요가 없었다. 본문 중 말했듯 그녀는 문제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하나씩 소거해가면서 사회가 원하는 모습을 흉내내는 삶을 찾아왔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와의 교제가 알려지자 주변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둘의 관계를 단정짓고는 마구잡이로 간섭했다. 후루쿠라 씨가 작중에서 가장 애정을 품는 여동생은 매번 그녀를 위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주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몸이 좋지 않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변명으로 그녀는 꽤 오랫동안 자신의 상황을 당당히 설명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여동생의 변화는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정상적인 삶에 집착하는 지 보여주었다.

  시라하씨를 처음 집에 들인 날, 후루쿠라씨는 여동생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전달했다. 일종의 의무감이었다. 말하지 않은 사실까지도 상상하며 어떻게 만났으며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냐는 둥 들뜬 동생의 모습에 그녀는 불안감을 느꼈다. 다음날 여동생은 집에 찾아왔고, 언니의 동거가 어떤 형태인지 알게 되었다. 시라하 씨는 화장실에서 살고, 후루쿠라가 방에서 사는 순전히 같이 살 뿐인 이 형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동생은 알아차린 것이다. 여동생은 갑자기 서러워하며 자신이 얼마나 더 참아야 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절규하며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으라고. 고치러 가자고 울부짖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수차례 병원에 갔지만 고칠수 없었다는걸 그녀도 잘 알터인데. 그 때, 시라하 씨가 나와서는 ‘보통 사람들’처럼 둘이 ‘어제 내가 진 빚 때문에 심하게 다투는 바람에 그렇게 표현한거다.’는 식으로 설명을 해주자 그녀는 이내 화색이 돌아 이번에는 시라하 씨를 향해 직장은 왜 없으며, 빚을 왜 많느냐는 둥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야단을 치는 여동생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밝았다.

  시라하 씨와의 교제가 알려지자 주변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둘의 관계를 단정지으며 마구잡이로 간섭했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 결혼을 하며, 아이는 언제 나을것이냐는 둥 다그치기 시작했고, 그녀의 의사와 관계없이 연애 선배의 말을 들으라며 별 의미 없는 말을 떠들기 시작했다. 후루쿠라는 그러 그들의 모습에서 다르지 않다,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안도감을 보았다. 그 앞에선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인간이 아닌 이 사회에 필요한 암컷으로 여겨진다고 생각했다. 사하라가 말한 ‘사회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강간한다’고 했던 말에 공감했다.

  사하라는 자신의 편안한 삶을 위해, 사회로부터 숨기 위해 그녀를 직장인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18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너무도 허무하게 편의점을 그만두게 되었다. 편의점의 부속품이 아니게 되자 그녀는 삶의 기준이 사라졌다. 누군가의 흉내를 냄으로써 간신히 사회에 적응한 그녀는 이제 그 방식이 아니면 스스로의 삶을 지탱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고통스런 2주가 지난 뒤 그녀는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날 아침 면접장소 앞의 편의점에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바쁜 편의점을 보고 이끌리듯 직원처럼 현장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제품을 옮기고, 음식을 나열하고, 매대를 정리하고, 손님을 안내하고. 이내 그녀를 말리는 시라하에게 그녀는 말했다. 자신은 편의점 인간이라고,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고. 인간이기 위해서는 당신과 함께하면서 당신이 노리는 대로 직장인이 되어 당신을 먹여살리는 편이 나을수 있지만. 나는 인간이 아닌 편의점 인간이라는 동물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편의점을 위한 생각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갈 생각에 삶의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란게 무엇일까? 과연 그녀는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변사람들이 더 징그럽게만 느껴지는건 기분탓일까? 그녀는 인간임을 포기하고 편의점 인간이라는 새로운 동물이 되기를 택했다.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다소 과장된 설정이긴 하나 분명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에 집착하고 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는 더 큰 힘을 지닌다. 그것에 ‘정상적인’, ‘보편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 범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비정상이 되어버린다. 그들의 의지로 그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닌데, 멋대로 금을 그어 두고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정상적인’의 수식어가 오랜시간 지속되며 여러 논리와 권위와 결합되고 문화에 녹아들어 ‘올바른’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차별이 시작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이런 차별의 해소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 지고 있지만, 이는 심각한 문제에 한정될 뿐이다. 다름의 인정을 가르치는데 있어 ‘틀린게 아니라, 다른거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든 다름은 언제나 ‘잘못됨’으로 바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해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역학 구조는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레 차별을 만들어내곤 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수많은 다름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조금만 벗어나면 왜 취직을 못하니, 왜 결혼을 못하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마구 야단을 쳐 댄다. 분명 다수의 의견인 만큼 상대가 야단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진정 공감을 하고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이 야단을 들어야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본인이 선택한 길을 가는것일 뿐인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후루쿠라처럼 ‘아니 나는 결혼을 못하는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려면 혼자서 살아가는 편의점 인간이 되어야 한다니까?’하는 식으로 말하면 마치 못볼 것을 본 듯이 멀리하거나 야단 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회는 교화를 통해 같은 부류로 만들려고 애쓰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시켜 버린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다름은 생산성을 불러올 때만 허용된다. 남들과 다른 짓거리만 해대는 창의적 인재는 원하지만 동성애를 하는 변태는 사라져야한다니 명백한 모순이다. 좋은 다름과 나쁜 다름이 따로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화가 필요할런지도 모른다. 놔두면 시라하 같은 사람이 넘쳐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사회 현상의 핵심에서 벗어난 일상적인 부분에 있어서, 정상을 구분하는 경계는 더욱 뚜렷해져만 간다.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하나의 인간상을 강요한다. 이상한 것이 이상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불쾌하거나 두렵기 시작했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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