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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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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446회 작성일 17-04-0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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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4년 전 쯤, 회사 회식자리에서 ‘회사는 어떠냐? 만족할 만하냐?’라는 통제관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원에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으셨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만족할만한 생활을 했기에 이것저것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비슷한 유형의 질문을 받았다. 이번 질문의 특징은 이전보다는 좀 더 포괄적이었다는 것과, 잘 알고 있는 지인으로부터도 아닌, 일면식만 있던 사람이 적당히 술 취한 채 다짜고짜 자리를 옮겨오더니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본인의 가치관은 무엇이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만족하는가?’ 술에 취해 살짝 풀어진 눈이지만, 그 눈 속엔 나에게서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정말 좀 무서웠다. 마치 인생의 중간평가를 받는 기분이었다. 날 쳐다보고 있는 저 두 눈은 지금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그 즉시 내 삶을 끝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기세였다. 이제 막 착하게 살자고 맘먹고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그 당시 난 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은 그 여자아이가 무서워서 대답할 수 없었다.

 

예전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본 책을 읽다가 다시 한 번 똑같은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속한 그룹의 환경에 만족하는가? 이 나라에서의 삶에 만족하는가?’ 아마 이에 대한 사회 대다수 사람들의 대답은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을 반영했을 확률이 높다. 본인이 노력한 결과일 수도 있겠고, 또한 그 노력이 실현되도록 잘 길러주고 공부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정도. 하지만 가끔 느끼지만, 그 성취도에 있어서의 공적인 영향, 그러니까 그들이 그룹이나 국가로부터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의 절반 이상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그룹 혹은 국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그룹이 크고 발전한다고 해서 그 그룹의 모든 구성원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억압적이고 폭력과 무질서가 판치는 그룹에 소속된 사람이 만족할만한 삶을 누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은 분명 개인의 몫일 수도 있지만,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는 일차적으로 그룹의 상황에 좌우된다. 따라서 이러한 분위기를 잘 보존하여 우리의 뒷사람들에게 더 훌륭한 형태의 그룹을 물려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많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그룹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그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 더 훌륭한 형태의 국가를 만들어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전 대통령의 구속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나는 이것이 주권재민과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본다. 유명한 누군가 ‘법치주의의 조종이 울린 날’이라고 구속을 반발했다. 잘 알 법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상당히 의아하다. 사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마치 정부가 국민들에게 법치주의를 설파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여럿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가 외려 법치주의를 외쳤다. 법치주의와 준법주의를 혼동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 신념에 반한다고해서 ‘법치주의가 죽었다’고 반박하려하는 것인가? 여하튼 우리나라는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정부가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속성이기에 그 어떤 주의도 필요 없다. 법치주의는 이러한 권력자를 견제하여 권력의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권력자도 법을 지키도록 강제하려는 통치의 원칙이다. 통치 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하기 위함이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가 위임받은 헌법과 법률의 권한범위,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 의도를 실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론 복종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이번 탄핵은 법치주의를 존속시키는 것은 물론 자유주의 국가론을 바탕으로 한 현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가 수립되는 나라를 생각해봤다. 필요에 따라서 뜻을 왜곡하여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대하고, 국민으로만 생각하고 인간으로는 존중하지 않는 이러한 국가를 벗어났으면 한다. 또한 부당한 특권을 행사하고, 반칙을 방관하고, 절망 속에 누군가를 방치하는 국가를 벗어났으면 한다. 그러한 국가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국가 안에서 우리 자신이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이었으면 하고,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러한 나라가 못됐다고 해서 내 나라를 비하하거나 사회를 냉담하게 보진 않는다. 다만 이번 탄핵에 이은 구속이 이러한 나라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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