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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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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114회 작성일 17-01-0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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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이규섭

 

  여기 어머니를 잃은 소녀가 있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어머니의 죽음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에 색채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임종을 놓친 아버지는 그런 기회를 놓친 불쌍한 사람이라 여겼다. 소녀의 안에서 아버지는 두려운 마음에 일부러 어머니의 임종을 놓친 도망자였다.

  물론 소녀는 아버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원망하지는 않았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한 이 아가씨는 아버지는 세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슬프게 할 사람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괴짜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할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하던 일과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하고 남은 재산을 딸에게 넘겨준 뒤, 집을 나와 ‘아르헨티나 빌딩’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주변 모든 이들이 그랬을 것이고, 소녀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아내의 죽음에 비관하여 제정신이 아니라 여겼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것도 괴상한 여자와. 석공일을 그만둔 아버지는 그 이상한 빌딩에서 그 이상한 여자와 함게 살면서, 조각을 하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득 딸은 조각가야말로 아버지의 진짜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쩌면 ‘아르헨티나 할머니’ 유리와 지내며 보여주는 어색한 모습들조차,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 좌절한 채 새 여자에게 꼬드겨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잊지 않고 있었고, 유리와의 새로운 삶 역시 살아가고 있었다. 딸은 조금씩 아버지를 만나러 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빌딩’을 드나들며 딸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다시금 딸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방황하던 두 사람은 유리를 통해 다시금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누군가와 이별하면 그 빈자리에 또 누군가 들어오는 법이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리에 ‘아르헨티나 할머니’ 유리가 들어왔고, 6년 뒤 유리가 죽은 뒤에는 그녀가 낳은 소녀의 동생이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누군가와 이별하는 끔찍한 고통 후에도 어떻게든 새로운 형태로 살아가 진다는 것. 소녀는 처음 맞닥뜨린 어머니의 죽음에서 이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떠나간 사람은 더는 우리 인생에서 자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사람대로 마음속에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간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만남이며,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대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소녀는 어머니와의 추억을 끊임없이 더듬었다. 소설 속 아버지는 어머니의 비석을 돌고래 모양으로 새로이 만들었다. 비석이라기에 너무 생동감 넘치고 귀여운 형태인지라 다른 이들은 어색해했지만, 그것이야말로 죽은 아내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걸 딸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고래 비석이 그러하듯, 유리가 죽은 뒤 ‘아르헨티나 빌딩’이 그 자체로 유리의 비석이며 그녀와의 추억을 담은 ‘유적’임을 깨달았다.

  이별은 어려운 일이고, 슬픈 일이다. 누군가와의 현재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바란다면 이별은 더욱 괴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 듯 만남이 있으면 이별은 예정되어 있기에, 그리고 그 이별은 불현듯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피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이별이란 그 사람과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큼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남과 이별이 반복됨에 따라 지나간 추억은 유적이 되어 가슴속에 남아 앞으로의 삶을 다채롭게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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