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이승만 깨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961회 작성일 17-02-06 15:09

본문

이승만 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권혁철, 김광동, 김용삼, 남정욱, 류석춘, 배진영, 조우석

 

      한 2년 전 쯤 이었던가. 지금은 어찌됐는지 조용해졌지만, 이승만에 대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는 건국대통령이라 하고, 누군가는 그 누구보다 추대돼야 할 독립운동가라고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이승만의 이미지를 토대로 한다면, 난 위의 질문들에 대해 꼭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했다.

 

      답을 하나씩 해보겠다. 생각해보면 이승만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인물이다. 해방 전후, 조선의 대표적 지도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광복 직후에는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에 뽑혔을 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때 1위는 여운형, 2위가 김구, 그리고 3위가 이승만이었다. 여담으로, 소문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암살을 당했고, 그 배후로 이승만이 지목되고 있을 뿐이다.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만큼, 이러한 음모론과 같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도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흡입력도 있을 수 있고, 시나리오도 잘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이승만이라는 사람과 지금 시대의 우리가 조응할 이유'는 무엇일까? 본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과 같은 흥행 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보통 이승만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소개했을 때다. 당시 UN을 우방으로 끌어들여 나아가 한미동맹 체결을 이끌었으며, 결과적으로 공산화를 저지하면서 단독정부를 수립했다는 점,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에서는 명백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주장들을 하지만 그나마 꼽을 수 있는 것들은 위의 사항들인 듯하다.

 

      이런 점은 그를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추대하기에 충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승만에 대해서는 이와는 다른 면도 존재한다. 우리의 건국의 아버지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대전으로 도망을 쳤다. 본인이 도망가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한다. 다리에는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죽음을 맞아야 했고, 미처 다리를 건너오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들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납북되었다. 심지어는 아군이 의정부를 탈환했으니 서울시민은 안심하라는 기만적인 라디오 방송을 하며 국민을 속였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에 이승만은 6·25 전쟁으로 인해 나라가 어수선했음에도 개헌을 강행했다. 당시 대통령은 국회의원들이 선출하는 간선제였는데,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고난 뒤, 강제력을 동원해 대통령 직선제로 바꿔버린다. 심지어는 1954년경,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폐지한다는 개헌을 강행한다. 개헌안이 통과되려면 135.3이상, 즉 136표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간발의 차로 넘지 못하자(135명), 소수점 이하의 숫자는 1인이 되지 못하여 인격으로 취급할 수 없으므로 사사오입해서 135명이 된다는 괴상한 논리로 자신의 장기 집권 플랜을 밀어붙인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이었던 셈이다. 권력욕 얘기가 나왔으니 더 짚어보겠다. 당시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던 조봉암을 간첩죄로 사형을 시켰고, 급기야 1960년에는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당시 기사에 실린 내용에서는 3, 5인 공개 투표, 참관인 축출, 사전투표 등의 내용을 언급되었는데, 당시 이 투표가 국민 민심의 마지노선이었던 것을 알 수있다.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마산에서 김주열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4·19 혁명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이승만은 권력의 끈을 놓았다.

 

      ‘아무리 그랬다고 해도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던 시절의 이승만은 그래도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사실 미국에서의 독립운동은 그의 탐욕과 부정부패로 거의 파국에 다다랐었다. 1908년에 함께한 독립운동가 전명운과 장인환은 친일 미국 언론가를 저격해 사살했다. 두 사람의 재판이 진행됐는데, 진행에 있어서 이승만에게 통역을 부탁했지만,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명목으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핑계고, 미국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본인에게 그 두 사람은 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시간이 지나고 1919년이 되었을 때, 미국 정부에 대한민국 위임 통치제를 제안했다. 이후 독립운동 단체 간의 신경전이 생겼고, 대표회의에서 단체 간의 와해도 생겼다. 다행히도 최종적으로는 이승만이 탄핵되면서 분란은 가라앉았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승만이다. 사실 특정 인물에 대한 역사를 논할 때에는 편향성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특히 이승만처럼 의견이 분분한 인물에 대한 역사서에서는 그의 역사적인 공과 과를 모두 포함하여야 한다. 그가 대한민국을 건국했고, UN을 우방으로 이끄는 한편, 한미동맹을 체결하여 지금까지의 경제 발판을 마련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그의 공만큼 앞서 언급했던 과도 존재한다. 만약 본 책을 통하여 이승만의 제대로 된 평가를 이끌어내고 싶었던 취지라면, 해당 시대 상황에 맞게 그의 공과 과를 균형있게 논해야했고, 그에 대한 고찰이 따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아쉬웠던 책인 듯하다.


      글쎄, 이승만에 대한 나의 시각이 부정적이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승만은 어떤 사람인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