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 라몬 삼페드로 카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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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 – 라몬 삼페드로 카메안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삶에는 가치가 있으며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으로 고찰의 대상이며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많은 답이 존재한다. 반대로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자조차도 그의 제가가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죽음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는 인간에게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어려운 물음에 저자 라몬 삼페드로는 자신에게 죽음은 가치가 있으며 존엄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라몬 삼페드로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20대까지 선원으로 일하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삶은 자유이며 쾌락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바다의 깊이를 모르고 다이빙을 한 그는 머리를 부딪치고 그로 인해 목뼈가 부러지면서 얼굴밑으로는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된다. 불의의 사고가 난 이후 27년간 침대에 누워있으면서 자신에게 삶을 통한 가치보다는 죽음을 통한 자유가 더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전신마비가된 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안락사를 위해서 스페인 최초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유럽 인권재판소 및 대중매체까지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은 우울증이나 심리적 불안이 없으며 스스로 죽기 원하고 적어도 존엄있게 죽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존엄있게 죽고 싶은 주장을 법원은 인정하지 못한다. 다만, 1998년 친구의 도움으로 그가 원하던 죽음을 맞는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평소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없다. 죽음이 가까워지면서는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환경으로부터 잊혀지는 무서움과 죽음 이후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두려움일 것이다. 하지만 라몬 삼페드로에게 인간의 본능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가치가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30년의 긴 시간동안 그는 죽음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것이다.
“삶은 항상 삶에 기생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의 경계선을 넘느냐 마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여행에는 때가 있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날을 택할 권리가 있다.”
라몬 삼페드로가 재판관, 종교인들에게 보낸 자신에게 삶과 죽음이 무슨 의미이며 죽을 권리가 주어 져야한다는 편지를 보면서 우리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과연 나쁜 것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라몬 삼페드로의 존엄있는 죽음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가족이나 대부분의 지인, 종교인들은 죽음에 대해 반대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생명은 사유재산이 아니며 살아있다는 것에 가치가 있으며 밖의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는 그가 죽으려고 하는 것이 주변으로 관심을 못 받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한다. 하지만 그가 죽으려 하는 것은 이런 삶에 가치가 없으며 살려는 사람의 자유와 죽으려는 사람의 자유를 왜 동등하게 볼 수 없는지, 그리고 삶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믿는다고 답한다.
이제 늙음은 시간의 순리가 아니라 하나의 질병이 되어가고 있고 구글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근본적인 생명연장이 가능해지고 영생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반대로 존엄사,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일을까. 이런 물음은 옛날부터 금기시된다. 현재는 자살을 막지 못하면 자살교사 방조죄로 처벌을 하고 있으며 나폴레옹은 자살자는 변절자, 탈주자라고 언급했다. 그 만큼 인간에게 죽음은 불가항력적이여야 하고 자발적이 여서는 안된다는 기본바탕이 깔려 있는 것이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삶에 가치가 있는 것인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삶의 가치도 선택적이 될 있으며 이것은 곳 도덕적이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인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이 저절로 우리를 찾아오기 전에 죽음의 비밀스런 집에 달려들어가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란 말인가?” - 셰익스피어. 라몬 삼페드로의 삶을 보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어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 어쩌면 가치 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존엄있는 죽음이 필요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드는 것보다 스스로 노쇠 해가는 것이 더 두려운 필자처럼 그에게는 살아가면서 더욱 권태 해지는 것이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생명 연장에 더 가까워 질수록 우리는 존엄사가 정당성의 문제인지 아니면 도덕적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찰이 점점 더 필요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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