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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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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027회 작성일 16-11-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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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알베르 카뮈

이규섭


  지금의 시대는 옳음에 대한 지나친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보편적인 윤리 기준이 가장 불분명해진 시대이기 때문일까.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부정당하고, 뜻밖에 그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옳을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진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과 강한 갈증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언제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듯. 옳음과 정의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망은 중요한 다른 것을 놓치게 한다. 더욱 멋진 사회는 옳은 것(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을 지향하는 자세의 연장선상에 있을지 모르나. 인간 본질은 오히려 그와는 정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갈망하게끔 하는 지금의 시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암울한 것이다.

  뫼르소를 통해 우리는 어떤 이상향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는 모습은 그의 성격을 대변함과 동시에 소설 전체의 주제를 관통한다. 그저 독특할 뿐인 그의 태도는 후에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에 그의 인간성을 의심받는 증거로 이용되고, 그를 형장으로 이끌게 된다. 자신 이외의 것들에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어머니의 죽음에조차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연인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어떤 여인이든 결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결국, 종반에 ‘태양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의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현대사회에서 사이코패스로 명명되기 적합한 인물로 변모했다. 작중 내내 그는 죽은 아랍인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작품 전체에 걸친 그의 복잡한 생각 안에서 죽은 아랍인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살인이라도 이 정도면 아무리 좋게 봐줘야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그는 지나치게 자신의 사고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고, 삶의 끝에서야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는 무정한 사람이다.감정의 소모마저 귀찮아 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현대인 특유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리에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인 본인은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이가 그를 공격하고, 다른 이가 그를 대변하며, 다른 이들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결국, 참수형이 결정되었음에도 그는 항소를 거부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항소가 기각되는 날에는 그의 운명은 순전히 타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끝에 찾아온 부속 사제와의 대화에서 그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위로도, 하느님이 가져다줄 무엇인지도 모를 마음의 평화도 아닌, 나의 삶을 스스로 회상할 수 있는 삶이라고. 얼마 남지 않은 삶 속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길을 택했다.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무언가 기댈 곳이 없으면 안 되는, 죽은 채로 살아가는 당신들에게는 없는, 나 자신의 ‘정당함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것을 되뇌면서. 그리고 나서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우리는 분명 사회의 악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악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누군가 한 사람은 우리를 규정지으려 하는 무언가로부터,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없을 수 없게 하는 이 사회로부터,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모순적인 우리의 존재로부터 저항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너무 어지러워 하나의 사건이 사그라들 때면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지면서 우리를 사회적 이슈로부터 멀어질 수 없게 만든다. 정보의 확산과 사상의 공유는 과거보다 ‘올바름’과 ‘선’이라는 암묵적인 사회의 기준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그것이 불분명한 것이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대로 특정 기준을 윤리적 척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개인의 입장에서도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주관이 없이 집단에 몰입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저 살아가기도 힘든 시대지만, 사회의 문제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장 등한시하기 쉬운 것이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이를 저지하려는 현실로부터 저항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양쪽으로 모두 저항해야 비로소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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