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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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을 읽고...
이규섭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지만, 한때 어른들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있던 판도가 최근 들어 조금씩 젊은이들을 향해 넘어오고 있는 것 같다. 청년들의 호소가 조금씩 기성세대를 설득하기 시작하던 찰나에,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어른들의 잘못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인식이 퍼졌고, 최근에 드러나기 시작한 기득권 세력의 부패한 모습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온 잘못된 사회구조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세이 집인 본 책의 둘째 장 ‘좋은 어른’은 좋은 어른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을 비관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어른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이제 어른이 된 자신이 과연 좋은 어른이 맞는지 반성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번 글에서 딱히 ‘어른들이 나빠요!’ ‘나는 어른들에게 억압당하고 있어요!’라는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상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어른을 향해 비난을 퍼부을 정도로 분노하지는 않았다. 이 글에서 느낀 감정은 바로 씁쓸함이었다.
IMF 시기에 작가는 텔레마케팅 사업장에서 일했었다. 그때 그는 부장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느꼈던 부장이라는 사람은 분명 좋은 어른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살갑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진 세상 속의 젊은이들을 걱정하며 자신이 좋은 어른인 양 굴었던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이익 앞에서 직원들의 두 달 치 월급을 들고 도망갔더랬다. 두 달 후 만난 부장은 자신도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온 가족이 고시원에서 산다며 호소하는 그에게 작가는 나는 원래 고시원에 산다고 말하려던 걸 꾹 참았단다.
얼마 안 되는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소위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주변 사람이나 유명인이나)을 어쩌다 실제로 보게 되면 늘 내 눈에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 세상에 영화 속 악당은 없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악행을 각오하고 저지르는 사람은 드물고 다 본인도 모르게 혹은 자신을 스스로 속여가며 그저 이익을 좇아 행동할 뿐이구나. 나쁜 사람은 그저 그 이해관계를 따지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챙겨주지 못할 뿐인 그런 사람이구나. 그렇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수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때로는 많이 고통을 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쩌면 영화 속 악당보다도 더 잔인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작가가 좋은 어른이 없음을 한탄하고, 좋은 어른이 되고자 했으며, 자신이 좋은 어른이 아닐까 노심초사했던 것은 누구를 질책하고자 하기에 앞서 좋은 어른이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어린 사람들은 나중에 저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면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어른인 사람들도 나만큼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분명 시간이 갈수록 좋은 어른을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직은 삭막한 세상,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평범함이라는 범주 안에서 자연스레 저지른 악행들이 얼마나 있을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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