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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 :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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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6,500회 작성일 16-12-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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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주 : 실록에서 지워진 조선의 여왕, 정빈 저

 


    최근 연세대학교 익명 커뮤니티에 공주전이라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다. 상황 설정이 비슷하고 공교롭게도 병신년(丙申年)에 벌어진 일이라 하여 어디선가 많이 봤던 장면 같게 느껴졌다면 다만 뉴스를 많이 본 탓이겠다. 손(孫)씨 성을 사진 의로운 선비와 그를 따르는 깨어있는 선비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야기 속 당시의 헬-조선이라는 나라는 일개 무녀의 손에 놀아나다 파국을 맞은, 역사책 한 페이지 구석에 조그맣게 기록될 나라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 공주전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 이후 들춰진(?) 이야기이지만 소설 혜주는 사태 이전인 올해 초에 나온 소설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하야’나 ‘탄핵’ 관련 이야기가 이토록이나 불거질지 몰랐던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실제 거사가 이뤄진다면 이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언한 이 소설은 많은 이들이 성지순례를 다녀가야 마땅할 만큼 주목할 만하다.

 

    소설 속 혜주(혜명공주)의 아버지인 광조는 재위 동안 선정을 베풀며 공신 세력을 기반으로 한 과감한 개혁으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은 뛰어난 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선왕의 뜻을 받들어 혜주를 옹립하게 된다. 왕위에 오른 혜명공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군의 자질을 보이는 듯 했으나, 이내 간신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꼬임에 넘어 갔을 뿐만 아니라 애정행각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유모였던 민상궁과 요즘 청와대의 십상시를 떠올리게 하는 당대 최고의 술객 노천 그리고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었던 승려 무극이 3인방을 결성하여 국정을 농단한다. 또한, 왕이 된 혜주는 승려 무극과 애정행각에 빠지면서 더욱 국정을 소홀히 하고, 중요한 국정 현안은 술객 노천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 노천은 혜주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하면서 비위를 맞추는 간신배 노릇으로 임금을 폭군의 길로 이끌어간다.

 

    결국 여왕 혜주는 폭정을 견디다 못한 신하들에 의해 재위 4년차에 왕위에서 쫓겨날 궁색한 처지가 되자 민상궁을 비롯한 3인방에게 자결할 것을 지시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다. 물론 픽션이기는 하나 조선 최초의 여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여러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자 대통령을 연상하게 된다. 세월호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대홍수, 메르스 사태를 닮은 장질부사 대유행, 미스터리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여왕의 말 못할, 그러나 짐작이 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신하들은 여왕 혜주를 다음과 같이 평하며, 여왕의 재위 4년간의 기록을 역사로 남기기 부끄러워하여 불살라 버렸다.

 

“오기와 독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무능한 임금은 또 처음 봤습니다.

본인이 잘 모르면 신료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면 될 텐데 침전에서 혼자 모든 걸 처리하려니 

무리수가 따르는 건 당연지사지요. 솔직히 말해 폐주가 군사를 알겠습니까?

외교를 알겠습니까? 기껏해야 문고리 권력인 우별직 노천과 좌별직 무극 그리고 민상궁의 치마폭에 

놀아난 꼴이니 주변 사람을 잘못 쓴 것도 다 폐주 자신의 책임이지요"”

 

    국정원 대선개입 등의 부정선거 논란이 크게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일말의 기대감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부친 정권 시절 6년 가까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였으며 1998년 정계에 입문한 이래 근 15년 가까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니 그 정도면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 볼만도 했다. 덜컥 왕위에 오른 혜주와는 달리 스스로 슬로건으로 내걸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지금과 같이 ‘귀 닫고 버티기’ 정신을 그리 오래토록 준비해왔던 것은 아닐까.

 

    4차 정권퇴진촛불집회가 끝난 후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소설 ‘혜주’를 읽은 한 독자가 저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혜주처럼 현 정권 4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물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바라는 국민들 수백만이 마음의 소리를 내지르는데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적어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대통령이라면. 번외로, 이 책은 많이 팔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출간 당시엔 너무 허무맹랑한 소설이었고, 지금은 믿기 힘든, 아니 믿기 싫은 허무맹랑한 현실이 소설을 완벽히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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