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망각
페이지 정보

본문
과거에 글을 썼던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온고의 지신으로 돌이키는 솔직한 과거를 바탕으로 앞길을 봐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됐건, 사회가 됐건, 그것이 추한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 가리지 않으며, 결코 눈을 돌리거나 부풀릴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바라보고 그것을 지침 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주체가 좀 더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 고찰하는 과정 중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필연적이다. 그러다 역사를 돌이켜 보는 과정에서의 만약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말을 최근 어디선가 듣게 되었다. 간단한 이유로는 ‘그때 만약 그게 그렇게 됐다면 지금 이 모양은 아닐 텐데’라고 해봐야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에 대한 의미부여는 어쩌면 사후 해석에 불과할 뿐이지, 결코 '완벽하고 영구지속적인 유토피아적 진보'를 이루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만약이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회고해야 할 어떤 특정한 역사도 분명 존재한다. ‘부질’없다고 그냥 보고 넘길 게 아니라 끊임없이 ‘부질’을 해서 우리가 교훈과 경계로 삼아야 할 그 무엇을 말이다. 그러한 단편적인 예를 한번 보자.
사람들에게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고르라고 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방 직후 친일부역세력을 깨끗하게 청산하지 못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통일된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한 것이다. 이 두 좌절의 역사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친일 부역자들이 해방 후 살아남기 위해 친미와 반공이라는 줄을 부여잡고 분단세력의 주축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해방 직후에 있었던 친일 청산의 골든타임은 미군정이 인준을 거부해 놓쳤지만,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기회는 존재했었다. 바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였다. 여기서 이제 만약이라는 가정을 적용해보자. ‘만약’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부의 탄압으로 해체되지 않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을 엄정하게 다스려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과연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 일단 대통령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역사에 ‘박근혜’라는 이름의 대통령이 기록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100%였을 테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식민 잔재들을 쓸어냈다면, 일왕에게 혈서로 견마지로라 맹세한 일제의 괴뢰만주군 장교복을 입은 자가 해방 조국의 국군 장교로, 나아가 장성으로 승승장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청산은 다른 나라의 1940년대 전후의 나치협력자 처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유럽의 전후 처리 사례로 비춰본다면 박정희의 경우 아무리 운이 좋았다하더라도 최하 공직추방과 공민권 박탈의 처분은 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감행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도, 유신도, 삼선개헌도, 10.26도 없었을 것이다. 가정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박정희 급사 후의 권력 공백기에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일당이 들어서지 않았을 테고, 이들의 12.12 쿠데타도, 광주학살도, 군부독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10.26사태 이후 30여 년 뒤, 아버지의 후광과 가당치도 않은 ‘조실부모’ 동정표에 힘입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일도 이 ‘만약’의 역사에서 볼 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
프랑스: 레지스탕스 즉결처분 10000명, 임시 재판소에서 사형 6700명, 징역형 및 시민권 박탈 10만 명
폴란드: 사형 2500명, 징역형 18166명
네덜란드: 사형제도 부활, 사형 154명, 징역형 및 시민권 박탈 84000명
중국: 사형 369명, 징역형 14400명
한국: 사형 1명, 무기 1명, 유기 13명, 공민권 정지 18명, 형 면제 2명, 무죄 6명
----------------------------------------------------------------------------------------------------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대거 숙청한 것과 같이 우리도 일제부역 언론을 청산했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1,2,3위를 자랑하는 신문들이 존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TV 채널을 돌리다 이들이 만든 종편 채널을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들이 해방 이후 교육자로 변신하고, 그 후손들이 소위 일컫는 민족사학, 명문사학이라는 간판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현혹해 교육계를 장악해버리지도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 다시 현실로 돌아와 실제를 직면해보자. 그랬더니 최 씨가 보이고, 사람들의 시위장면이 보이고, ‘아, 내가 이러려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했나’라는 괴리감이 들며 감당하기 힘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다. 정신 건강에 아주 해롭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역사일수록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려 반추하고 기억해야한다. 이러한 역사는 망각을 자양분으로 해서 계속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로 예를 들었으니 계속하자면, 실제로 우리 사회는 지난 2000년대 중반 국가 차원에서의 친일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앞으로 친일 행위를 비호하거나 정당화하는 시도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총리로 지명된 문 모씨가 나타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궤변을 놓고, 정부연구소의 센터장이 세미나에 나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여당 대표와 공영방송의 이사장도 나와서 자신의 선대 친일 행각을 앞다투어 변명하고, 이것을 좌파의 선동으로 몰아갔다. 그러더니 우리의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며, 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에 마침표를 찍었다.
즉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은 단지 ‘완벽하고 영구지속적인 유토피아적 진보'를 이뤄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특정 사건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이것들을 기억에서 꺼내어 망각의 어둠 속에서 뒤틀리고 변조되지 않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다시말하면 기억의 공간을 형성하여 그것을 학습하고 현실과 일치시키는 작업을 통해 완벽하진 않지만 지속적인 진보를 이루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 이전글불구가 된 미국 - 어떻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인가 16.12.05
- 다음글기탄잘리 16.12.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