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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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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966회 작성일 17-01-0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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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21세기 초반에서도 가장 많은 이슈를 낳은 해이다. 굵직한 사건들만 돌이켜보면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유럽 난민 사태와 테러 등등 정말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언급한 사건들은 전부 예상이 빗나가거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들이다. 브렉시트만 해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덜컥 일어나서 전 세계에 가십거리를 일으킨 사건이고, 미국 대선은 개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힐러리의 당선이 확실시 되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선거인단의 압도적인 차이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세 번째 사건은 말할 필요도 없다. 드라마 보다 더 현실 같은 사건이다. 네 번째 사건은 그야말로 유럽 정치 지형을 대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언급한 사건들은 언론에서는 “포퓰리즘의 승리,” “극우의 부상,” “보수의 대반격,” 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맞는 말이지만, 위의 사건들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본인은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하려고 한다. “주류 정치는 실패했다. 그리고 진보는 더욱 실패했다.” 이는 올해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일어난 여러 사건에서 유추하여 종합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브렉시트는 본인도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사건이다. 원래 영국이 통화도 유로가 아닌 파운드를 사용하고 솅겐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아서 유럽연합 내부에서 혼자 따로 놀긴 했어도, 나름 경제공동체로서 함께 해온 역사가 있고 연합에 잔류하는 것이 경제적인 이득이 크기 때문에 탈퇴라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독립도 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된 적이 있기 때문에 비슷하게 부결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물론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탈퇴가 가결되었고, 언론들은 앞 다투어서 원인 분석을 했다. “이민에 대한 거부감,”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 “독일에 대한 반감,” 이라고 진단하면서 대부분 언론들이 대중의 보수성을 파고들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민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대영제국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유럽 연합을 탈퇴한 것일까? 이민은 과거에서부터 꾸준히 있었고, 대영제국의 영광은 다신 오기 어렵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계속 다루었기에 탈퇴 했을 때의 리스크 또한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언론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여러 정보로부터 얻어서 정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위 주류라고 말하는 집단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진영을 막론하고 세계화를 제창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이동을 보다 더 쉽게 만들었다. 진보적인 집단은 더욱 나아가서 이민과 다문화를 장려하면서 동시에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부는 더욱 상위계층이라 할 수 있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과 상위 계층으로 흘러들어갔고, 남은 것을 두고 기존의 사람들과 유입된 이민자들이 경쟁하는 꼴이 되었다. 그리고 자국 노동 시장을 견제하기 위한 기업들은 기존 자국민들 대신에 이런 이민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하였다. 진보주의자들은 저임금으로 이민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면서 이들에 대한 임금 정상화를 기업들에게 촉구하였고, 보수 쪽에서는 기업이 자국민들을 보다 우선적으로 고용하도록 촉구하면서 법인세 등에서 혜택을 주면서 당근책을 내놓았지만 양쪽 다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양쪽의 입장에서 보기에 당연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였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자국민들은 자신들은 소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고, 이러한 원인으로 화살을 상대적인 약자인 이민자들에게 돌리면서 반이민 정서가 급증하였다. 국내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해지고 극우 정치인들이 이를 자극하자,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혐오로 규정하면서 반이민 정서를 비난하였다. 그래서 원래 진보세력을 지지하던 전통적인 노동자 계층이 자신들의 일자리가 침해 된다고 여겨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를 철회 한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들로 인하여 반이슬람 기류까지 떠올랐고,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용과 포용이라는 이름아래 수용해야 한다고 진보진영에서는 주장하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자극하였다. 보수 진영에서도 이런 반이민 정서에 비판하는 움직임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에서 주장한, 소위 ‘정치적 올바름 - 정치적으로 옳은, 인권이 고려된, 차별적 편견이 없는, 평등한’에서 비롯한 모순과 암묵적 강요 및 위선(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질린 유권자들은 투표로 주류를 비롯한 진보 진영을 심판하였고, 이러한 국민들의 심리를 잘 파고든 세력들이 크게 성장에서 국제 질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가만히 살펴보면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진보의 ‘정치적 올바름’에 염증을 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정치적 올바름’ 자체에 대한 염증도 있지만, 현실을 모르거나, 현실을 이상에 맞춰서 행동하려하고, 이를 주변에 강요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뿜어낸 집단에 대한 반감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크리스마스에 흔히들 말하는 ‘Merry Christmas!’에 대한 논쟁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Merry Christmas!’가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반감을 일으키고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내포하고 있으니 ‘Happy holiday’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일부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연히 이런 주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할 수 있는 주장이고,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도 'Happy holiday'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남부의 바이블 벨트에서는 ‘Happy holiday’ 주장에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다!’라고 하면서 극렬히 반대하였고 온건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기독교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에 대응해서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종차별주의자,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진자라고 프레임을 씌웠다. 결국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소위 진보 소수파 조직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용어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으니 쓰지 말고, 이러저러한 용어를 쓰라'고 '지시'를 내리는 셈이 된다. 보통 이런 조직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해 스스로를 신성시하며, 상하관계가 수직적이고 이른바 '교리'가 매우 교조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과대하게 포장하여 마치 대다수의 의견인 양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진보들은 자칫 ‘수구적’으로 보일까봐 소수의 의견에 휩쓸리게 돼서 일반 대중들의 정서를 외면하게 되고, 그 반대급부로 일반인의 진보에 대한 염증과 괴리감은 커져만 가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가 역설적이게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자신들이 역차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미국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의 러스트 벨트 공략이 주효해서 당선된 이유도 있지만, 대중의 심리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주장만 하던 민주당과 힐러리의 전략적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몇몇 언론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비난을 목적으로 "못살고 못배운 백인 남성들과 멍청한 53% 백인 여성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백인 우월주의가 여전하다."고 말했다. 자기들 좋을 땐 힘없고 불쌍한 서민들이라더니, 자기들 나쁠 땐 못살고 못 배운 거지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상당수의 배운 백인 중산층들도 트럼프를 찍었다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의 정치적 올바름에 기인한 도덕적 경직성과 오만함이 상당수 유권자들을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인 유럽까지 뒤흔들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독자노선을 걷고, 프랑스는 국민전선이 반이민-반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대선까지 넘보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는 극우 정당이 세력을 불리고 있고, 헝가리, 폴란드는 극우 정권이 난민 정책과 관련하여 자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일과 대립각을 내세우면서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난민, 이민, 테러, 다문화, 역차별 등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기존 진보 세력들의 정책적 실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이상적인 것에만 함몰되어 일반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세력은 심판을 받아 도태되고, 이 틈을 파고든 극우세력들은 제 2의 나치와 파시스트가 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뒤틀린 ‘자칭 보수’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벌어진데 이면에는 진보 진영의 갖은 실수가 밑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러한 원인들을 보수 언론의 프레임 씌우기와 ‘종북몰이’라고 규정하고 주류 언론들을 비판하였다.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 언론들이 진보 진영에 대한 시각을 왜곡시키는데 일조한 것은 당연히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보수 우위의 구도를 타파하겠다고 소위 ‘친노’를 위시한 ‘강남 좌파’ ‘진보 좌파’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도덕적 우월감과 올바름에 대한 믿음에 기인하여 보수 언론들과 지지자들을 ‘수구꼴통’이라고 매도하였다. 이런 행태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을 ‘깨시민’ ‘입진보’ 라고 조롱하면서 감정싸움을 하였고, 이런 진보들의 대응에 더 불편해하는 시민들은 진보는 답이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론은 ‘친노 패권주의’를 운운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웠다. 거기다가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사건에서부터 내란 음모와 해산까지, 진보 진영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그 여파는 상대적 중도라고 볼 수 있는 민주당까지 신뢰를 잃는데 일조하였다. 이런 일련의 배경들이 모여서 2013년 박근혜 정권이 탄생하였고, 이는 보수의 승리가 아니라 진보의 실패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2016년 총선에서 ‘친박’ ‘진박’ 거리다가 쪽박을 차고, 대통령마저 탄핵 상황에 몰렸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소위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기 위하여 대중들의 우매함을 비판하고 보수 진영에 화살을 돌리기 전에, 자신들이 정책적으로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일반대중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소통, 그리고 자신들을 합리화 하는 도덕적인 오만함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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