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실록에서 배우는 리더의 품격 - 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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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조선 27명의 왕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을 말해준다. 왕이라는 것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는 것이 아니다. 왕은 승계되는 것으로 왕이 되어 통치를 하고 싶다는 자발적인 의사를 가지고 왕위에 등극한 왕이 있는가 하면, 정사에는 관심이 없지만 등이 떠밀려 왕위에 오른 사람도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의지가 없는 왕은 자연스레 리더십의 부재가 드러나며 나라를 이끌어 감에 있어 순탄치 못하다.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왕을 생각한다면 세종과 영조 정조가 있다. 세종의 리더십은 당시의 사상으로 비추어 본다면 파격적이다. 황희 정승을 등용한 일이 대표적이다. 황희는 어미가 노비라 서얼로 양반 출신이 아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데다가 2차 왕자의 난에 역적의 아내와 간통을 하고 금품수수까지 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세종은 황희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후대에 우리가 아는 조선 최고의 재상 황희 정승이 존재할 수 있었다.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 출신성분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을 추구한 덕분에 노비출신이었던 장영실이 관직에 오르고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세종의 리더십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백성들과 ‘소통’을 했다는 점이다. 백성들의 말을 들어주었으며, 글을 모르는 백성들과의 소통의 편리를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떠오르는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세종의 생각은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보다 더 깨어있었다.
조선을 대표하는 폭군을 생각하면 단연 연산군을 떠올릴 것이다. 그가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했던 이유는 주색에 빠졌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주색에 빠져 직언을 하는 신하들을 모조리 죽였다. 당시 조정은 훈구파와 사림파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연산군은 결국 이 두 개의 파의 마음을 잃었다. 현명한 리더였다면 훈구파와 사림파를 함께 견제하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못했다. 내 편이 없는 것이 결국은 문제가 되어 연산군이 신하들에 의해 폐위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 그룹의 리더는 중요하다. 그 그룹을 확대해 국가에 적용해 보면, 국가의 리더 즉 대통령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묻는 촛불 시위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다. 대통령이 임기동안 해온 업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대통령의 리더십만 보고 평가해 본다면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적합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세종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통령이란 국민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대변하고 그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대통령의 행보는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집이 완강한 것은 신념이 확실하다는 긍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수용할 줄 아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몇 년전, 섬김 리더십 등 각종 이름을 단 리더십들이 등장했었다. 리더십이라는 개념만 없었을 뿐 과거부터 리더에게 리더십이라는 덕목은 필수적이었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왕이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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