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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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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5,320회 작성일 16-10-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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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전에 한마디 할게 있다.

 

“이게 나라냐?”

 

어떤 역사학자는 기고문에 명성왕후와 무당 무령군과의 관계가 이와 같다고 논평할 지경이니,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봤을 때 지금 정권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일어난 단점만을 가져다가 모아놓은 느낌이 강하다.

 

유방이 죽고 혜제(유방과 여후 사이의 아들, 여후가 척부인을 끔찍하게 죽이자 그 충격으로 세상을 하직했다.)마저 죽자, 여후가 전한을 좌지우지 할 무렵 정치적 야심을 드러내어 여씨 일족을 제후국 왕으로 삼고자 하여 우승상 왕릉을 불러 이게 되는 일이냐고 물었더니 왕릉은 강직한 성품답게 "안 됩니다"라고 했다. 진평과 주발에게 물으니 이들은 “됩니다”라고 했다. 왕릉이 이 두사람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면서 강하게 항의하자 진평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조정에서 질책하고 간언하는 것은 우리가 우승상만 못하오. 하지만 사직을 보호하고 유씨의 후손을 안정시키는 것은 우승상께서 우리만 못하지요." 이 말은 들은 왕릉을 사기에서 “그야말로 왕릉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라고 쓰였다고 한다. 과연 그 말대로 몇 년 후 여후가 죽자마자 진평이 선수를 쳐 여씨 일족을 몰살시키고 한문제를 옹립하여 유씨를 안정시켰으니 처세는 처세대로 성공하고 의리는 의리대로 지켰으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진평은 그렇다 쳐도 왕릉같은 사람은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우니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싶다.

 

위나라 시절 도입된 구품관인법은 중정(中正)이라는 벼슬을 가진 사람이 인재를 추천해서 선발하는 방식인데, 위나라 중반부터 중정이라는 작자들이 자기 인맥이 아닌 사람은 절대로 뽑지 않아 자기들끼리의 관맥을 형성하였다. 거기다가 사마씨 일족이 중정자리를 장악하면서 관료들을 전부 사마씨 일파로 채워 놓으니, 조조가 닦아놓은 기반을 사마의가 그대로 집어삼켜 서진이 건국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진시대에는 더 심해져서 자기들끼리 문벌을 형성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문벌과,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각 지역에 배치된 사마씨 황족들, 권력에서 소외된 나머지 중소가문들 간의 갈등으로 통일 30년도 안되서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팔왕의 난, 이 혼란을 틈타서 이민족들이 침공해서 정권이 강남으로 쫓겨나는 영가의 난이 일어났다. 좋은 뜻에서 실시된 제도가 자기들만의 제도로 변질되면 나라가 반토막 날 정도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제도권이 인정하지 않는 비선실세들이 추천한 사람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않아서 국정을 운영한다? 나라 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기 뜻에 거스르면 잘라버리고, 영합하면 대우해주는 이러한 시스템을 가져온 사람들은 전원 단두대에 세워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경제-사회 분야의 국정 농단에 그치지 않고 외교-국방 분야에 까지 손을 댔으니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서희라면 누구나 알법한 고려 최고의 외교관이다. 거란의 소손녕이 침입해오자, 침입 의도가 연운 16주를 두고 송나라와 전쟁을 하기 이전에 배후를 안정시키려고 하는 사전작업임을 눈치챈 몇 안되는 안목을 가진 위인이다. 할지론에 반대하여 혼자서 거란진영으로 가서 담판을 지었고, 여진족이 살고 있던 강동 6주를 고려가 차지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지한 강동 6주를 서희가 요새화시켰으니..... 이 요새들은 거란의 2-3차 침입과 대몽항쟁시절까지 고려의 북방을 지키는 최전선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지금 국제정세에서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을 갖춘 서희 같은 인물이 10명이 있어도 아슬아슬한 판국에 정권은 외교부 장관은 사드 배치할 때 쇼핑을 하러 가고 있고, 근본도 없는 무지한 인물들이 비선실세랍시고 외교까지 농단하려 드니 외교 한번 할 때마다 나라를 절반씩 말아먹은 송나라 외교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거기다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는커녕 순전히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쑥덕거리면서 내키는대로 정국을 좌지우지 했으니 무슨 명나라시절이 아닐 수가 없다.

 

주원장이 공신들을 탄압하고 재상자리를 없애면서 황제독재체재를 갖추었다. 물론 통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주변 측근들은 있어야 했고 자동적으로 환관들이 그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다. 물론 주원장은 유방의 뒤를 잇는 토사구팽의 달인이므로 환관들도 몸을 사리고 다녀야 했지만, 아들인 주체가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정난의 변) 영락제가 되자, 황제 독재권의 강화를 위하여 환관들에게 지나치게 큰 권한을 주어 후대의 환관들이 전횡을 일삼았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 위충현은 황제를 등에 업고 전횡을 저질러 이자성의 난과 청나라의 침입으로 명나라 멸망에 화룡점정을 찍었으니, 측근정치는 대부분 국가 기강을 흩트리고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정국이 이지경이 된 원인에는 지금 입국해서 죄를 받겠다고 하는 누구 뿐만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문고리 붙잡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국정을 농단한 문고리 3인방의 죄도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이 문고리 삼인방의 전횡에 대하여 문제 삼자 언론을 탄압하는 것마저도 주원장이 일으킨 문자의 옥이랑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같은 비선들이라고 해도 운영하는 주체가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는지에 따라서 순기능을 바휘하기도 하고, 역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YS의 하나회 숙청이다. 기존 행정 조직에는 대머리... 아니 전두환의 하나회가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비선 측근들하고만 의논하며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다가 어느 시점에 하나회를 한번에 물갈이하였다. 물론 의도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 만한 세력을 싹쓸이 하는 것이 었지만..... 결과론적으로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문민정부가 계속 들어 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똑같은 비선이어도 운영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순기능을 하고 역기능을 하는 것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언론에서 보도를 하는 상황을 보면 볼수록 기가 찬다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던 조중동-한경오 양대 좌우언론이 한마음 한뜻으로 정권을 공격하면서 언론의 본연의 기능을 하고 있는 반면, 공영방송이라하는 KBS MBC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언론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역사를 라이브로 본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공영방송이 정권의 스피커가 되어서 제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거울삼아서 실수를 줄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도 돌아봐야할 역사는? 당연히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월 항쟁을 돌아봐야 한다. 두 사건 모두 나라를 막장으로 운영하고 독재를 일삼하서 자기 배나 채우던 정권을 시민들의 힘으로 끌어 내려서 지금의 1987년 9차 개정 헌법 체재를 만들 일련의 사건들이다. 30년동안 대한민국을 수호해온 9차 개정 헌법은 이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국민들의 분노를 이끌어내고 정권을 뒤엎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해서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할 지혜를 짜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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