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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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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242회 작성일 16-1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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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돈과 그의 시대  -  김창현 저



    찬바람이 쌩쌩 부는 늦가을에도 우리의 정국은 여전히 뜨겁다. 수 백억의 기금이 순식간에 조성되고 칼같던 입시/학적제도를 하루 아침에 뚝딱 바뀌어버리게 하는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중에게 밝혀지고 나서부터 연일 쏟아지는 여론의 질타와 비판은 역사적으로도 그 어느때에 비할 수 없을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비선실세가 등장한다. 비선(秘線)은 사실 어느 정권에서나 문제였다. 전두환,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형제들이,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는 자녀들이 제 3자라는 타이틀을 목에 걸고 비리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국정이 농단되어 나라 전체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다. 왜 우리는 이제야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일까, 아니 왜 이제야 우리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일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권력의 행사는 투명해야한다.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권한을 어떠한 절차와 규칙에 입각하여 행사해야 하는지 미리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비선실세의 권한행사는 말 그대로 베일에 가려져 있어 그 어떠한 통제를 받지도 않은 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책임 또한 지지않기 때문에 권력 행사는 남용된다. 근대국가에서 법이 마련된 이유는 국민들이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가지기 위함인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권한이 행사될지 모르는 마당에서 국민들은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어진다.

 

    근/현대를 벗어나 우리 역사에서도 비선실세는 여러차례 등장하였다. 고려말 공민왕 때의 신돈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돈은 공민왕이 정식적으로 발탁하여 권력을 위임하였으므로 비선이라 할 수 없겠지만,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그 범위가 통제불가하고 절차 또한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후에 기록으로 보자면 비선실세임이 분명하다. 일개 승려였던 신돈은, 권문세족들의 정치 다툼과 노국대장공주의 난산으로 인한 죽음 직전 정신적으로 피폐했던 공민왕의 꿈에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이유로 신임을 얻어 전격 발탁되게 된다.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그가 국정을 담당하게 되자 귀족들은 그를 요승으로 평가하고 쫓아내려 했다. 초기에는 공민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그였기에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안하무인격인 행동이 지속되자 귀족들이 그들을 탄핵하고 공민왕은 그를 유배보내고 결국 참수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실제 신돈이 얼마나 대단한 개혁가였는지, 혹은 현란한 말솜씨로 최고권력자의 정신을 흐리는 요승에 불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찬란했던 ‘수년간의’ 영광을 뒤로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었다.

 

    무엇이 그의 몰락을 가져온 것인가? 구귀족들이야 굴러들어온 돌을 항상 빼내버리고 싶었겠지만 결국 시비를 깨달은 공민왕의 결정에 기인한다. 지금 우리 정국은 이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깊히 속에서부터 곪아있다. 산 속 사찰의 중이었다가 갑자기 떡하니 나타난 신돈과는 다르게, 수십 년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하다보니 그야말로 오장육부로 생각되는 것이고, 단순히 비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을 가질 정도의 돈독한 관계(로 추정되) 다 보니 모두가 요승이라 해도 그들은 내칠수 없는 동지가 되어 난공불락의 대상인 것이다.

 

    게다가 고려말기와는 너무나도 상이하게도, 이 같은 사실을 흩어뿌리고 다시 하나로 모아주는 ‘언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귀는 견고히 닫혀있고 눈은 어두워져 있다. 언-권이 강력히 유착되어 있으니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무서운 것은 정작 자신의 역할은 져버린채 언론이 국가의 포스트-최고권력자를 찾고자 현최고권력자를 버리는 카드로 삼고 품에 안고 있던 덱에서 아예 내뽑아버렸다. 여당의 최근 분위기를 보고 몇몇은 ‘그래도 사람이 문제지 단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썩은 머리 자르기’로 그들은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자민당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냥 주인공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을 품은 단체에 대해 재평가할 ‘깨어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신을 흩트리려는 언론의 목소리를 가려 듣고 가려 볼 필요가 있다. 오래 전부터 나오던 얘기가 묵살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당대표가 되어 최고권력자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것을 가능케한 세력 자체를 재평가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끝없이 지속되어 오던 언-권 유착이 한순간에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뉴스를 뉴스로 덮으려는 마치 네트워크와 같은 언론프레임에 갇혀있지말고 조금 더 본질에 집중하여 시비를 가리려(노력하)는 태도가 우리 국민들에게 꼭 필요하다. 마치 원시부족사회에서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신권통치국가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미국의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토마스 제퍼슨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글을 마치겠다.

 

‘나는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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