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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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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5,760회 작성일 16-10-3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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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SNS, 인터넷이 발달하며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게 되었다. 가장 눈에 크게 띄는 변화는 아마 언론매체에 있는 듯하다. 기껏해야 신문지를 통해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접하던 것이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신속성을 획득한 기자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기사가 쓰여진다. 게다가 일반인들의 SNS에도 수많은 게시글이 올라와 무엇이 되었든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개똥녀를 시작으로 ‘~녀’, ‘~남’이 화제가 되었고,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신상털기가 가능해졌다. 대부분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의해 이러한 행동들은 보호되고 용인되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 침해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응하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정보가 공개되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면 본인은 어떤 기분일까?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주인공인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론보도의 재료가 되어 1면기사를 장식하게 된다. 27살의 평범한 가정부인 그녀는 우연히 참석한 댄스파티에서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괴텐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남자는 그녀가 기다리던 진실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남자는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는 인물로, 그 동안 언론과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카타리나는 그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그 과정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는 독자들의 저급한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성공적이었고, 그로 인해 카타리나 개인의 명예와 삶은 짓밟히고 만다. 평범한 여인이 “살인범의 정부”가 되고, “테러리스트 공조자” 혹은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러던 중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카타리나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를 총으로 살해한 것이다. 그녀는 경찰에 자수한다. 카타리나의 선택은 잃어버린 자신의 명예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언론의 힘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커서 개인이 그 앞에 저항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카타리나는 기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기자가 카타리나의 진술을 왜곡하는 수준은 정말 놀랍다.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표현을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로, 범죄성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표현이 카타리나가 “전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말로 왜곡되어 보도가 된다. 게다가 그녀의 주변인들에게 접근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생활 캐내기는 지저분하기 짝이없다.

 사람들은 가십거리를 좋아하고, 그런 점을 알고 있는 언론은 기사 제목부터 선정적으로 뽑아내기 바쁘다. 일단 기사를 쓰고, 사실 확인 후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조용해진다. 정정보도를 내더라도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왜곡된 사실은 계속해서 거짓을 낳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망가져버린 개인의 삶과 명예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기자를 살해한 카타리나의 행동은 극단적이지만, 언론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 결국은 유형의 폭력을 낳고, 낳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016년의 대한민국 언론은 총과 칼보다도 더 위험한 것 같다. 어느 때에는 작정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 같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자극적인 단어선정으로 기사를 개제함으로서 한 사람을 완전히 망치려 든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며, 언론은 진실 보도라는 본분을 망각한 듯 하다. 회장님의 성매매 기사는 금세 내려가고, 연예인의 성매매 사생활 보도는 일분일초를 다투며 올라온다. 더 강한 자극을 국민들에게 주며 우리가 진짜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자본주의 사회는 언론의 중립성을 잃게 했고, 언론은 자본과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언론의 ‘보도의 자유’는 약자를 대상으로 할 때만 활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기자들은 알아야 한다. 그들이 보도의 자유를 주장하며 표현을 왜곡하며 진실을 호도할 때 분명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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