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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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마키아벨리 저
우리나라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주말에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고 길거리에서는 이러한 현수막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위는 우리나라의 3위나 4위쯤 어딘가에 있었고, 우리의 최고 통수권자의 자리는 대통령에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충격적인 만큼 상실감이 컸고 부끄러웠다. 우리나라 18대 대선에서 과반수 이상인 51.6%의 표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상실감은 더 커졌으리라. 투표자의 과반수 이상이 표를 주었고,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였기에 우리는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시민들이 인정한 것은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였지 대통령이 꼭두각시가 되는 나라는 아니었다.
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군주론을 읽다 보면 불편한 부분들이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대명사인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주론>에서는 군주가 군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윤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에게 불리한 약속은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히 권모술수의 대명사라고 불릴 만하다. 이것이 내가 군주론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군주라면 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착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상황의 불가피성에 따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p. 262)”
“현명한 통치자라면, 신의를 지키는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거나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된다. (p. 278)”
500년 전에 집필되었음에도 군주론을 읽다 보면 흡사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행동을 보는 듯하다. 위에서 언급한 ‘현명한 통치자라면 자신이 약속한 이유가 소멸할 경우,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지켜서도 안된다.’라는 말은 ‘당선되기 위해서 약속한 공약들은 당선이 되고 나면 지킬 필요도 없고 지켜서도 안된다.’라는 말과 동의어이지 않은가. 이것이 과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위대한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중세시대의 마키아벨리와 같은 지도자층이 생각한 일반 시민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일반 시민의 모습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얼마 전 개, 돼지 발언으로 논란이 된 사건만 봐도 그렇다.
"민중은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출발 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나향욱 교육부 정책 기획관
우리나라 아이의 교육을 도맡은 교육부 정책 기획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긴 지금의 대통령과 고위 관리만 봐도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현 정부가 아비규환에 빠지고 사실상 국정이 거의 중단되었는데도 청와대와 검찰은 시민들을 우롱한다. 잘못의 당사자는 모르쇠로 일관이고 애꿎은 사람들만 옷을 벗는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현명한 통치자가 되기에 참으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이렇듯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백성을 사랑하고 정직해야 한다와 같은 일반적이고 진부한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배자의 입장에서의 생각이 아니라 시민 입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이 우리가 군주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군주론에서 얘기하는 내용에 따라 악랄하고 비열하게 행동하여 일반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군주론을 읽고 지배자들이 우리 시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파악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군주론은 지도자가 아니라 대중들이 반드시 읽고 되새김질해야 할 쓰디쓴 고전인 것이다. 아무리 지도자들이 우리를 하찮게 생각한다 하여도 실망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중세시대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수 천 년간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여전히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혹자는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야말로 현실적인 해결책이며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나갈 지침서라고 말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것이 우리 사회의 성공이라 말한다면 나는 성공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고 싶다. 적어도 내가 낳은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하지 않겠는가. 어쩌다 거짓과 위선이 우리의 성공을 위한 지침이 되었는지 매우 개탄스럽다.
외국에 나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현지인들은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다. 얼굴도 까무잡잡한 게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동양인이 신기했을까 아니면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이었을까 모르겠지만. 아무튼 ‘I’m from Korea.’라고 대답할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 묘한 기분이 든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립고 정겹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끔 뉴스에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답답하고 심지어는 혐오스러운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에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다. 사회 구석구석에 짙은 고름이 배어 있지만, 새살이 터져 나오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너무도 빨랐으니까. 빨리 달리면 넘어지기 쉬운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넘어지는 와중에도 어쨌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나라도 곧 많은 사람이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전 세대가 보여주었고 우리의 역사가 증명했듯이.
하지만 다음에 외국에 나간다면 ‘I’m form Korea.’라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분노와 상실감으로 잠을 설치는 요즘, 고름을 빨리 짜내지 않으면 썩어 문드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썩은 곳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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