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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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배우 마리나 그레그는 배우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성을 얻었지만, 개인으로서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랑스러운 그녀는 몇 차례의 결혼 실패와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기까지 마음 속 깊은 상처를 품고 있다. 그런 그녀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인 세인트 메어리 미드 마을로 이사를 왔다. 조용하고 고풍어린 분위기의 보수적인 이 마을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밀려드는 근대 문물과 그로 인한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빅토리아풍의 고전미를 간직한 고요한 마을이기에 이목을 피해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은 정의 소중함과 인간관계의 순기능을 잘 보여주는 글귀이지만, 요즘은 진심어린 마음에 기대고 또한 건네는 풍조가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 여러 매체의 도움으로 얕고 넓은 인관 관계를 쉽게 형성할 수 있게 되었으나, 오히려 깊이 있는 인연을 맺기 어려워진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든 정을 나누는 어울림의 결과가 ‘기쁨을 나누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니 약점이 되더라’라는 비틀린 표현처럼 쉽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이나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을만한 모습을 그리는 데 익숙해지게 된다. 이러한 화려한 외로움과 더불어 해소되지 않는 속앓이는 자신의 표현력을 더욱 자제시키며 의사소통을 방해한다.
히더 베드콕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이를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성심이 밝고 활기가 넘치는 여성이다. 언젠가 자신이 돌보고 있던 오막살이에서 쫓겨난 가족이 남편의 집안에 대대로 물려 내려온 가보 숟가락을 훔치는 것을 보고도 이를 저지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선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데에 거리낄 것이 없다. 그런 그녀를 보고 제인 마플은 타인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전혀 개의치 않는 한 지인을 떠올리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런 여인이다. 그런 그녀는 자신이 열렬히 동경하는 배우인 마리나 그레그의 이사에 들뜨고,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을 고대한다.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발산하는 히더 베드콕은 감정 절제로 인한 속앓이로부터 자유롭다. 비록 거침없는 의사 표시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기도 하지만, 그 속내에는 호전적인 태도나 부적절한 공격성을 띄거나 본인의 이권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기에 오히려 그런 당돌함이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자신의 바람과 욕구에 충실한 자기 의사는 비록 동기가 없을지라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바로 마리나 그레그의 풍진 진단과 그로 인한 장애아 출산이다.
히더 베드콕은 비록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리나 그레그의 슬픔에 크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된 마리나는 얼굴을 굳힌 채 그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사실 히더의 잘못은 명백하나 그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데, 풍진에 걸린 채 마리나를 만나려 한 것은 팬심이라고 해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처사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범죄가 아닐뿐더러 마리나의 임신 사실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무분별함은 동기 없는 악행을 낳았고, 이로 인한 상처를 감안하면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마리나의 결정은 추후 여파를 미처 고려하지는 못하였겠으나 결코 우발적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을 가면을 쓴 채 행복을 연기하던 마리나의 가면을 벗기고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게 만든 사람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열렬한 팬 히더 자신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소한 행동 하나가 자신과 타인에게로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두 사람 간의 이야기는 언행의 무게에 대한 책임감을 보다 강고히 하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한편,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되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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