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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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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선진
댓글 0건 조회 6,068회 작성일 16-11-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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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오랜만에 갖는 조용한 주말이라 집사람과 대청호로 향했다. 추운 날씨에 오가는 사람이 적어 단풍과 어우러진 호숫물이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강변길에 조용한 카페가 있어 차를 세워두고 따뜻한 국화차를 한잔 시켰다. 푸른 하늘을 유유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백로, 저만치 지나가는 시골길의 낡은 자동차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켰지만 금새 꺼버렸다. 오색빛깔 곱게 물든 가을 속에서 새까만 까마귀처럼 심각하게 논문 쓰는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신 챙겨왔던 이기주 작가의 산문집 ‘언어의 온도’를 펼쳤다.


 작가는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얘기한다.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있고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상살이에 지칠 때 친구와 주고받는 따뜻한 언어는 마음의 위안을 준다.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유사한 사전적 의미의 언어라도 언어가 품고 있는 온기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정신을 치료하며 소통을 넘어 교감의 단계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간혹 끓어 오르는 화를 못 이겨 감정이 잔뜩 실린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마음속 상처는 쉽게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에 흔히들 누가 아픈지 누구를 아프게 했는지 모른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하여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온도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작가는 짧막한 사례 속의 인물을 통해서도 따뜻하고 의미 있는 말들을 전한다.

“기주야, 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 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그런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고 그로부터 희망을 품는다.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상상을 하며 기대에 부풀고 마음은 한껏 들뜬다. 소풍 전날 설레는 마음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기억, 사랑하는 사람 만날 생각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고 그 속에서 푹 빠져 살았던 행복한 때가 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때도 온다. 현실의 노예가 되고 삶이 계획되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모습이 점점 늘어난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언젠가부터 버티고 생존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다. 아름다운 꿈은 없어지고 날 것의 현실을 묵묵히 버텨나가는 삶이 도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우리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내가 산타 할아버지가 된다. 내가 설렜던 감정들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게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아이들이 경험 할 수 있도록 행복을 물려준다.


 명성을 얻어 유명한 사람 되기, 열심히 돈을 벌어 부자 되기,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멋진 사람 되기 등 개개인의 꿈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는 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그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리 인생은 더 행복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 바라보는 청명한 가을하늘, 내가 출근하여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저녁약속, 퇴근 후 집에 가면 나를 웃으며 맞이 해주는 가족의 모습 등 삶의 곳곳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기는’ 글자 그대로 서정적이고 따뜻했다. 책 곳곳에 있는 짤막한 글들에는 저자의 생각과 감정이 부드럽게 녹아있어 독자들에게 매우 따뜻한 솜이불과 같은 교훈을 남겨준다. 그래서인지 글의 호소력이 짙어 사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소 쌀쌀한 가을날씨이기에 작가의 온기 있는 글이 따뜻한 국화차와 어우러지며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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