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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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 파울로 코엘료
그간 ‘마타 하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몇 번 흘려 들었을 뿐이다. 세계대전 당시 유명했던 스파이였고 미모가 워낙 뛰어나 유럽내 권력자들을 매우 많이 알고 있었다는 것 정도가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것의 전부였다. 사실 아는 바가 워낙 없었기에 궁금함을 가질 이유조차 딱히 없었다. 뭐든지 약간이라도 아는 바가 있어야 더 알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책을 읽게 된 계기도 ‘마타 하리’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 보다는, 그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가 신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에서 였다. 그다지 대단치도 않은 이유로 시작하였지만 나에게는 이번 책이 두 가지 이유로 깊은 감동과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작가의 표현 기법 때문이었다. 책은 프랑스 정부에 체포되어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마타 하리’의 회상으로 시작되어 과거의 일들을 묘사하다가 필요시 잠깐 잠깐씩 현재로 되돌아 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네덜란드 장교와 결혼하여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것부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갈 결심을 하는 것, 파리에서 그간 없었던 독특한 방식의 무용을 통해 유럽 최고의 무희로 명성을 얻어가는 길 등 일련의 사건을 단순히 시간 순서로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타 하리’라는 인물의 심리적 상태에 맞춰 각각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감” 할 수 있게끔 묘사하고 있다. 그저 주인공의 일대기를 읽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독자로 하여금 ‘마타 하리’가 되어 그녀가 처한 상황과 심리적 갈등, 그리고 시대적 배경 등을 마치 경험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사형 집행일 만을 기다리며 수감되어 있는 주인공의 회한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마침내 모든 것을 내려 놓은 ‘마타 하리’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연금 술사>를 읽었을 때도 책 속에 완전히 빠져서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집필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마타 하리’가 살아왔던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마타 하리’는 실존 인물이고 20세기에 활동하였다. 그 당시 유럽은 사실상 남성들의 사회였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내조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 상식이었던 세상인데, ‘마타 하리’는 그러한 관습을 거부하고 남성들의 요구에 저항하는 신여성이었다. 매 순간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이고 싶어했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그녀의 삶의 방식은 기존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기에 숱한 저항에 부딪혔을 것이다. 사실 그에 앞서 기존에 관습과 정 반대되는 발상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것 자체부터가 경이로운 일이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펼쳐질 것이 뻔한데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된 길을 택할 수 있었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불완전한 시스템에 저항하고 기존의 관습을 거부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 혁신이라면 그녀는 20세기 유럽 여성들의 혁신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없던 방식을 그녀는 택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남자의 힘과 보호를 받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던 당시 여성들로써는 미처 상상하기 힘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유럽 전역의 남성들을 사로잡고 부와 권력을 얻은 모습은 소위 말하는 당대 유럽 여성들의 이상향에 가까웠을 것이다.
‘마타 하리’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프랑스-독일 이중스파이 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했지만 정말 스파이였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 내부에서는 정보 유출 관련하여 수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외부의 어지러운 상황과 더불어 그러한 내부 스캔들은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대상이었을 것이다. 유럽 전역에 걸쳐 활동을 하고 수많은 최고위층들과 관계를 갖고 있었던 ‘마타 하리’는 그러한 내부 상황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거물이었고, 그녀가 실제 스파이 였는지가 불분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는 설 또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책 또한 후자의 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듯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의 스파이 역할 여부에 관계 없이 ‘마타 하리’라는 사람 자체는 분명 대단하고 또 그녀가 생각했던 방식에 대해서는 배워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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