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이갈리아의 딸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6,265회 작성일 16-12-03 16:00

본문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쉬워졌고, 단순한 취미활동에서부터 정치적 성향까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한 목소리를 내는 이러한 집단은 온라인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올해 발생한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상에서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Mirroring)을 골자로 이뤄진 ‘메갈리아’ 라는 커뮤니티가 주목을 받았다. 그녀들은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여성을 억압하고 성차별을 벌이고 있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다. 그 와중에 ‘메갈리아’ 라는 커뮤니티의 어원이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여성인권 관련 책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세상 밖으로 표출된 그녀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이름이 되었는지 궁금하여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의 줄거리는 장래에 잠수부가 되고 싶은 한 아이가 자신의 성 역할에 맞지 않은 직업이라며 나무라는 가족과 사회의 편견을 벗어나려 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상황의 주인공은 여자이며, 거칠고 힘든 잠수부는 남자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남자’이며 책의 내용은 생물학적인 성 역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 한다.


 작 중 배경은 ‘이갈리아’ 라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체계가 뒤바뀐 가상의 세계이다. 주인공인 청년 ‘페트로니우스’는 잘생기고 근육질, 짧은 머리의 어머니와 작고 뚱뚱한 하얀 피부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상적인 외모의 부부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주인공의 설정에서부터 ‘이갈리아’ 라는 세상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자의 섬세한 관점은 ‘이갈리아’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뒤바꾸어 놓음으로써 우리의 상식을 파괴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남성을 지칭하는 ‘man’과 여성을 지칭하는 ‘woman’은 ‘이갈리아’에서는 여성을 지칭하는 ‘wom’과 남성을 지칭하는 ‘manwom’으로 불린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신인 ‘하느님 아버지’ 대신에 ‘하느님 어머니’를 찾는다. 또한 성인 남성은 낭심 보호대인 ‘페호’를 차고 다녀야 조신하게 보인다고 여긴다. 이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부분, 그리고 그간 우리가 성차이라고 생각하며 인정하고 받아들이던 부분에 대해서도 여성우위사회인 이갈리아를 보았을 때는 성차별이라 느끼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게르드 브란튼베르그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1970년대 초반부터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 참여 하였던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이갈리아의 딸들”도 이 운동의 연장선에 있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써진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뿌리 깊은 성차별의 모습을 인식하길 원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의 ‘브래지어’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작 중 ‘이갈리아’의 ‘페호’를 보고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관습으로 성차별이 굳어진 것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요즘 사회 분위기에서 성차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지금까지 개선되어 왔고 앞으로 차츰 개선될 것이나, 성차별을 성차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선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인 나는 남성이기 때문인지 ‘이갈리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조금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저 책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시선이 ‘저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을 뿐 큰 공감과 흥분을 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페미니스트들의 필독서처럼 추앙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들이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분명 성에 의해서 어떠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반대로 성에 의해 어떠한 우대를 받는다면 그 또한 또다른 성차별을 일으킨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가 지속되고 개개인의 의식수준이 향상된다면, ‘성차별’과 ‘성차이’의 구분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바람직한 ‘성역할’이란 어떤 것 일지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