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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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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791회 작성일 16-10-0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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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이규섭

 

어린 시절 나는 잠자리에 쉽게 들지 못했다. 머릿속을 텅 비우면 잠이 잘 온다던데, 잠자리에만 누우면 그렇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끌벅적한 하루를 마치고 집안의 전등이 모두 꺼진 뒤에 방에 혼자 누울 때면 꼭 한 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것 같다. 죽는다는 건 어떤 것일까? 천국으로 가는 건가? 저승으로 가는 건가? 신이 있긴 할까? 신이 없으면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애초에 영혼이란 게 혹은 그 비스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런 게 있다면, 혹은 없다면 도대체 어떤 느낌이 날까? 애초에 느낌이라는 게 살아있는 것의 반증이니 모순인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어떤 느낌이지? 하는 식의 아무 의미없는 꼬리물기가 계속되다 보면 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생각들은 순수하게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단 한 번도 나 스스로가 죽음을 맞는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막연한 두려움이 전부일 뿐. 타인의 죽음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돌아와 나에게 힌트를 주지 않는 이상, 죽음을 앞둔 그 찰나의 순간, 그 감정을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나에게 죽음이 목전까지 다가왔을 때. 과연 나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가끔 몸이 너무 아프거나, 섬뜩하리만큼 기분이 안 좋을 때도, 혹은 아주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는 그런 불운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의 인간과 ‘나’라는 인간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기 때문에 나 역시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그 언젠가가 지금이 아니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다. 이반 일리치 역시 그런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키제베터의 논리학에서 배운 “줄리우스 카이사르는 인간이다. 인간은 죽는다. 고로 카이사르도 죽는다.”라는 유명한 삼단논법의 일례가 카이사르에게나 해당하는 진리였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말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가 보기에 카이사르는 인간, 즉 일반적인 인간이었기에 그러한 논법을 적용시키는 것이 의심할 나위 없이 정당했지만, 자기 자신은 카이사르가 아닐뿐더러 일반적인 인간도 아니었다. 이반 일리치에게 자기 자신은 언제나 아주 특별한, 일반적인 인간과는 전혀 다른 그런 존재였다.

(중략)

그랬다, 카이사르는 인간이었고 인간인 그는 죽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나, 바냐, 이반 일리치에게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지닌 바로 나에게는 죽음이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죽는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인생은 소설과 달라서 마음대로 적당한 시점에서 끝마무리 지을 수가 없다. 적어도 현실에 보이는 삶이란 죽는 시점에서 끝난다. 죽음은 결말이 아니라 관문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 관문. 그렇기 때문에 이반 일리치는 죽는다. 그가 극적으로 살아난다고 해서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니며, 언젠가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게 자명하다.

인생은 삶의 목표가 있기에 더욱 생기 있어지는 법이지만, 인생의 끝은 목표를 달성한 순간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이 된다. 동물로서의 생존 본능과 목표를 달성해가는 성취감을 줄기로 하는 삶의 구성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전력으로 도망치게 한다. 도망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삶은 마치 비극의 그것과 같다.

죽음에 대한 책과 강의가 붐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이를 고려한 삶의 계획을 통해 더 건강한 삶을 살고, 더 좋은 끝을 맞이하자는 취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일부의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애초에 이 책은 죽음을 앞둔 모든 이를 위해 교훈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어쨌든 이반 일리치는 죽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를 부정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죽고 나서 그 직전의 아주 짧은 시간이 행복했던 고통스러웠던 그게 얼마나 의미 있을지도 의문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감정은 아주 복합적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순응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스스로가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애초에 죽음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어찌되었든 마지막에는 우리 모두 죽음을 앞에 둔 이반 일리치의 입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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