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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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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5,494회 작성일 16-10-04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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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인의 축제인 2016 리우 올림픽 및 패럴림픽이 8월과 9월에 거쳐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대회 운영 및 경기 진행 측면에서 이야기가 많은 다사다난한 올림픽이었지만, 난민 올림픽 선수단의 출전과 같이 세계인의 평화와 화합을 바라보는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는 의미 있는 올림픽이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다소 소외 받는 패럴림픽에서 이목을 끄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한 선수의 안락사 예정 소식이었다. 벨기에 국적의 휠체어 스프린트 선수인 마리케 베르보트는 난치성 척추 질환으로 매일 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매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여겨지는 리우 패럴림픽에서 생의 최고의 순간을 즐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다행히 메달을 목에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직후 안락사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그녀의 발언에 의해 이는 오보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이 일화는 스포츠맨십을 위시하는 인간 극기를 무분별하게 찬양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시선과 죽음의 질에 대한 의문점을 다시금 상기 시켰다.

 영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2016)>의 윌 트레이너는 젊고 잘 생겼으며 남부럽지 않은 수완을 가진 사업가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얼굴 아래 전신마비 판정을 받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윌의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건재하고 어마어마한 재산이 남겨져 있었으며, 그의 사업 업무 또한 제한적이나마 수행할 수 있었기에 사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면 재기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휴양지를 방문하는 등 결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뿐 만 아니라 곁에서 그를 간병하는 연인조차 윌의 미소로 인해 간과하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매일 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평범했던 자신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 그의 좌절감이다. 이제는 결코 온전했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뿐 만 아니라 윌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런 그를 이해하며 다가오는 연인 루이자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데다가 그녀의 삶을 구속한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이다.

 최근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에 젖어 메달 경쟁에 연연하며 국가 간의 국력과시의 장으로 변질되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지만, 사람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한계에 대한 도전은 늘 사람들을 전율시키며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이들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조차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0.01초의 기록을 앞당기기 위하여 10여초의 시간에 인생을 바치는 100m 달리기 경기가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 극기에 따른 감동은 때로는 무료한 삶의 고무를 위한 수단으로 그 목적이 변질되곤 하는데, 오스트레일리아의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스텔라 영은 TEDxSydney를 통해 장애인을 통해 감동이나 영감을 받고자 하는 이러한 사회적 작태를 감동 포르노(inspiration porno)라는 표현을 통해 비판하였다. 장애인들의 활동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제약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과도한 관심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없으며 그들의 기대에 따라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인 것이다. 

 최근 삶의 질뿐 만 아니라 일생의 최종 마무리인 죽음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에서 존엄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는 생명을 두고서 이른바 죽음의 존엄이 과연 생명의 연장보다 가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은 다방면을 고려할 때 답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가볍게 논의 되어서도 안 되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미 비포 유>에서 루이자의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윌은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고, 주변인들은 이에 크게 슬퍼하면서도 윌의 선택을 이해하며 곁을 지킨다. 자신과 주변인을 위한 윌의 ‘이기적인’ 선택은 고향과 가족 그리고 그에게 구속되어 있던 루이자의 삶에 자유를 안겨 주었고, 그녀는 그의 바람처럼 그의 곁을 떠나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떠한 선택이든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겠지만, 본인과 상대방의 인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되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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