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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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 미쉘 드 몽테뉴
<수상록> 선집
살면서 딱히 죽음에 대한 걱정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죽음에 대해 심도 깊게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어서라고 평소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 보다는 삶을 영유하기에 더 바쁘다.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현재보다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미래 계획에 죽음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설령 그것이 있어야만 하더라도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젊은이가 죽음을 가정하며 미래를 생각할 것인가? 행복으로 가득하고 영예로운 삶을 사는 미래를 그리기에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다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것을 강요 받을 때는 간혹 있다. 큰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였던 세월호 사건 때가 대표적이다. 미처 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허무하게 진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건이다. 나보다도 한참 어린 생명들에게 불현듯 찾아온 죽음으로 전 국민이 슬퍼하고 애도한 시기였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것이 꼭 늙고 지친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것에 사실 그렇게 무감각하고 무신경해서만은 곤란할 것이다. 학부 때 통학을 위해 광역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항상 지나다녔는데, 한남대교 북단을 지날 때면 고속도로 사고 수와 사망자 수를 매일 표시해 놓는 전광판을 볼 수 있었다. 언뜻 기억나기로는 사망자 수가 “0” 이었던 것을 본 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사망자 수가 있었고 그들 모두 예기치 못한 죽음이 찾아왔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불청객이고 예고 없이 찾아온다.
적어도 평소에 죽음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다만 무엇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몽테뉴 조차 그랬던 것 같다. 수상록 초반에는 죽음을 삶의 최종 목표이고 필연적인 운명이기에 죽음이라는 역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수련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죽음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차라리 죽음과 친밀해 지라고 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따져 논함으로써 죽음이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라는 것이다. 인간은 미지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에.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준 학습 수단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노화다. 청춘에서 노년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단절 없이 계속 진행되는 노화를 통해 우리는 서서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의견에 다소 의문은 남는다. 죽음이라는 것은 유일한 경험이고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수단이 없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탐구하고 판단할 것인가? 아무리 고민하고 대비해본들 피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 것인가?
몽테뉴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듯 하다. 수상록 후반부에는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는데, 죽음은 인생의 끝일뿐 목표는 아닌 듯 하다고 하였다. 인생의 종말이자 극단이고 끝일 뿐이지, 인생은 그 자체가 목표이고 목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동시에 죽는 법을 모른다고 걱정하지 말라 한다. 고작 십 오분 가량 진행되는 죽음이라는 것에 시간을 쓰며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자연이 충분히 알아서 잘 가르쳐줄 것이니.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온 구절은 이러한 사상을 정말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춤출 대는 춤추고 잠잘 때는 잠잔다”가 그것이다.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완성이며 신적인 완성이라는 것인데,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는 관념이라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생의 순리임을 받아 들일 때 가장 평온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관념은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통용된다. 제아무리 고상한 철학과 이상이 있더라도 어떻게 매 순간을 그와 같이 살겠는가? 인간은 그 이상을 쫓으려고 하는 존재일 뿐. 이상을 향해 가며 동시에 나 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수상록의 맺음 부분에 나와있는 구절처럼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처지를 탐하며, 자신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밖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죽마를 타봤자 부질없는 노릇이다. 죽마를 타면서도 결국 우리는 자신의 발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세상에서 가장 높은 옥좌에 오른다 해도 자기 엉덩이로 앉기는 매한가지이다.”
- <수상록> 3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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