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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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 에쿠니 가오리 지음.
인간관계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면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부분의 스트레스가 이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든지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편안함을 주는 관계가 있다. 그들은 보통 가족이거나, 친구이거나, 이웃이라고 불린다. 이 책은 이런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시시콜콜하지만 편안하게 그려나간다.
공통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세 사람 (모자, 오이, 숫자 2)는 꿉꿉하면서 낡은 호텔 선인장이라는 이름의 아파트 거주민이다.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되어 하루의 끝을 오이의 방에서 함께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음료수를 홀짝대며 다른 추억을 쌓아가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이 되는 그들이었다. 세 사람이 만들어가는 우정은 어딘가 무관심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해주는 그 경계에 있었다. 그들 관계에 있어 가장 부러웠던 점은 각자의 영역이 적절하게 보장받는 점이었다. 각자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말들이 오고 가도 서로에게 쓴 소리 하기 보단 무심한 듯 흘러 넘기는 모습이 오히려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것 같았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보통 나만의 영역을 누군가 간섭할 때 시작되기 때문이라는걸 그들은 잘 아는 듯 했다.
계절은 아름답게 돌아오고, 재미있고 즐거운 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 – 호텔 선인장 중에서
각자 적절한 영역을 유지하면서 어울림은 약 일년간 유지되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호텔 선인장의 철거소식과 함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숫자 2가 강하게 저항해보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숫자 2’만이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성격이란 건 알 수 있다.) 일은 순리대로 진행되어가고 호텔 선인장이 철거됨과 동시에 셋은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진 세 사람은 미래를 기약하지만 호텔 선인장은 그들을 이어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로운 공간 속에서 그 적적함을 받아들이는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것이다.
사실, 사람에 따라서 이 이야기에 별다른 감동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명작에서 볼 법한 치밀한 스토리 전개도 없고 내용 자체도 짧기 때문이다. 단지 일상적인 에피소드 몇 편을 통해 이 세 사람의 내면 묘사에 집중할 뿐이다. 같은 클래식이라도 같이 들을 때와 혼자 들을 때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문득 친구하나 없는 적적한 방이 쓸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가끔은 이해 할 수 없는 친구지만 옆에 있음에 안심이 되는 순간들은 생각해볼수록 공감이 갔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과 헤어짐이 되풀이 되는 삶 속에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은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일상적이지만 편안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도록, 하지만 갑작스런 헤어짐에도 담담할 수 있도록.
안타깝게도 나의 ‘호텔 선인장’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딘가가 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면서도 적적한 하루다.
어느 시가의 동쪽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낡고 허름한 회색의 석조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석조 건물은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선선하여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호텔 선인장’, 이것이 이 아파트의 이름이었습니다.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인데도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호텔 선인장에는 일찍이, ‘모자’와 ‘오이’와 숫자 ‘2’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는 검은 고양이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그리운 아파트는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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