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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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명절이 되면 나에겐 항상 어른들의 핀잔이 떨어졌었다. 그 이유는 바로 게임이란 놈 때문인데, 항상 명절이면 ‘공부는 언제할거냐’,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등에서 파생된 모든 핀잔을 섭렵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 당시, 게임에 대한 나의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저런 말들은 그저 싸구려 도발에 지나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게임으로 치자면 난 존 폰 노이만의 천재성을 가졌었고, 마이클 패러데이가 했던 3만 번의 실험을 뛰어넘을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명절날 가기 싫으셨을 것 같다. 아주 죄송할 따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군대까지 다녀오면서, 내 인생을 지금처럼 만든 무언가를 뼈저리게 느꼈으니.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선 많은 꼰대들로부터 무시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무시라는 것은 사실, 명절날 나의 가까운 어른들이 날 위하는 것 마냥 떠먹여주던 핀잔 속에도 아주 가득했었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아주 찝찝한 마음에 내가 지금까지 먹은 핀잔들을 소심한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씩 꺼내보며 생각해보니, 사실 핀잔은 공부로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명절만 되면 각 집에서는 친지 사이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좋은 말들이 경계 없이 오간다. 불필요한 말은 그대로 망언이 되어 서로 간의 마음을 잃게 하고 사이를 망친다. 덕담이 뭐라고 그 이름으로 무례가 저질러지고 상처가 생긴다. 소위 망언 혹은 실언이라 불리는 것은 비단 가까운 어느 나라의 오만하고 개념 없는 정치인만 하는 게 아닌 셈이다. 학생 땐 ‘공부는 언제할거냐’ ‘커서 뭐가 될래?’, 대학 땐 ‘공부는 잘 하니’, ‘취업은 했니?’, 취업했더니 ‘연봉은 얼마니?’, 석사가 끝나고 박사과정을 한다고 하니 ‘마냥 공부만 할래? 돈 벌어서 결혼해야지.’
왜 남의 인생의 노를 자신들이 저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아무튼 이렇게 명절의 풍경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이번에는 최근 내가 들은 "결혼은 언제 하니?"에 포커스를 맞춰보려고 한다.
결혼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항상 뜨거운 이슈였다. TV 드라마에는 항상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사회적 직위를 가진 젊은 아들이 나온다. 그 아들을 바라보면서 엄마들은 장가는 언제 갈는지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나오곤 하는데, 이러한 장면이 거부감 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결혼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해한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지극히 일반적인 과정이었고, 그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화는 매우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초혼 연령은 점차 늦어져 2015년에는 평균 초혼 연령이 처음으로 30대에 접어들었고, 혼술, 혼영 등의 문화를 바탕으로 한 소위 혼족도 증가하고 있다. 명징한 것은 지금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최대한 미루거나 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많은 이유 중, 굳이 한 가지씩 꼽아본다면 남성은 결혼 비용 부담을, 여성은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남을 가장 많이 언급한다.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며 남성들은 결혼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여성들은 더욱 깐깐한 눈으로 배우자를 찾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은 자연스레 전략적인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것이 탓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서부터 인류에게 결혼이란 본래 전략이었을 테니까. 잠시나마 결혼은 사랑과 동일시되었고, 우리는 그 시기에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다. 어불 성설일 수도 있으며 나 역시 결혼을 한다면 사랑에 목적을 두겠으나, 사회적인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우리에게 결혼이란 다시 전략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결혼정보업체를 차렸어야 했나? 이들의 위상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러한 결혼정보회사에 따르면 현재 결혼 대상 회원들은 직업적 동질혼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보편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결혼 대상자들은 학력, 경제력, 종교, 직업 등의 상대방의 요소 중, 학력을 가장 높게 선호한다.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결국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제력이 높은 가정에서 학력이 높은 자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곧 직업과 연결되지 않던가.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이 뿐만 아니라 결혼정보업체에는 소위 상류층끼리의 매칭도 진행한다. 집안의 재력은 물론이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며, 작게는 공기업 혹은 공무원이 아니면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기존에도 회원들의 직업 등을 토대로 급을 나누는 행태가 존재했지만, 이런 발상이 수면 위로 당당히 올라왔다는 게 흥미롭다.
『에로스의 종말』에서 작가는 오늘날 이루어지는 사랑에는 그 어떤 초월성도, 그 어떤 위반도 없다고 한탄한다.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하는 낭만적인 사람들 혹은 그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현실이 마뜩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비혼 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통해 초월과 위반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역설적인 생각을 해본다.
좀 과장해서 생각해보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앞으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러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소위 헬조선의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혼은 도리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렇게 결혼을 단순한 인생의 선택으로 여기고, 다양한 선택지를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세대가 탄생했다. 앞선 세대가 보기에는 이를 망조라 치부하기 쉽지만, 이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을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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