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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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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932회 작성일 25-10-1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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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저마다의 어조와 행동으로 고유한 기운을 표출한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는 첫인상을 판단할 때 대화의 시작이 눈을 마주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을 가장 투명하게 대변하는 것은 안광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눈망울 속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 큰 호수처럼 잔잔해 안정감을 주는 눈빛처럼, 우리는 개성 있는 눈빛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고유한 결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난무하는 마약·사기·폭력의 자극적인 뉴스와 끝없이 갱신되는 숏폼 콘텐츠는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감정을 과도하게 끌어올린다. 그렇게 의식하지 못한 채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전보다 강렬한 자극을 갈망하게 되고, 평범한 주변의 일상을 무채색으로 느낀다. 태엽이 감겨야만 움직이는 인형처럼, 외부 자극에 끌려다니는 데 익숙해진 우리 시선의 시발점은 가지각색의 눈빛으로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자극에만 반응하는 흐릿하게 희미해진 동공이다. 이런 무기력 속에서 오랜만에 수채화처럼 잔잔한 영화를 접하게 됐다. 요란한 사건 대신 두 사람의 대화와 호흡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카메라는 그 둘의 시선에 집중하며 따라간다. 다양한 영화 속 숨겨진 장치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완연한 호흡으로 소음이 줄어든 여백 사이에서 그들의 오해와 변화의 미세한 떨림을 듣게 되고, 그 느린 호흡의 끝을 응시하며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내 생각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나는 뉘우쳤다. 나의 잃어버린 눈빛은 이목을 끄는 가십거리의 부재가 아니라, 스스로 묻고 차근히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으로부터 시작했었다는 것을.

 

 

"당신은 성 꼭대기에 살잖소. 당연히 내 세상이 더 흑인의 세상 가깝지"

“난 성안에서 살아, 혼자.

돈 많은 백인이 피아노 치라고 돈을 주지, 문화인 기분 좀 내보려고.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나도 그 흑인일 뿐, 난 그 모멸감을 혼자 견뎌내고 있어. 같은 흑인들도 날 외면하니까.”

 

 백인이지만 그 안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이탈리아계 백인의 토니. 그리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그렇다고 백인답지도 않다는 시선에 갇힌 흑인의 셜리. 나와 같은 집단에도, 내가 속한 집단을 멸시하고 핍박하는 집단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공통점을 지닌 둘 사이의 불편한 대화는 낯설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타인을 내 처지의 잣대로만 재단할 때 얼마나 손쉽게 오해가 생겨나는지를 적잖게 목격하고 때로는 직접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부로 평가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쉽게 단정하는 말과 시선을 거두지 않고 오해가 자랄 언행은 반복한다. 자기중심적이고 내 처치만을 기준으로 내뱉은 말과 시선이 상대의 상처를 깊게 파고드는 화살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재 속에서, 계속하여 자기편의적인 좌표로 상대를 판단하는 우리에게, 영화는 그 무심한 말끝이 어떻게 흉기로 바뀌는지 집요하게 보여준다. 위로가 필요할 때 곁에 서 줄 이도, 기쁠 때 함께 축하해 줄 동료가 없는 두 사람의 대화는 마주 서로의 고립된 처치만을 비추는 거울과 같지만, 나와 상대방을 가르는 거울에 균열을 내기 위한 것은 공백 속에 깃든 사연의 사연을 들어주려는 관심임을 일깨우면서 조용히.

 

 

 우리는 서로를 싫어할 필요가 없다. 다만 서로를 너무 모를 뿐이기 때문에. 영화가 마지막까지 화려한 화해의 장면을 보여주기를 대신하여 오랜 오해 너머로 건네는 조심스러운 응시와 대화만을 들려준 것처럼 말이다. 편협한 사고로 자극에만 반응하는 흐릿한 눈이 아니라, 먼저 멈추어 상대의 맥락을 묻고 끝까지 듣는 눈. 서두르지 않는 호흡으로 말끝의 온도를 낮추고, 거울에 난 균열 사이로 서로의 사연이 스며들 수 있게 여백을 남긴 토니와 셜리의 대화처럼 한발 물러선 시선은 오해를 흩뜨리고, 나와 남을 가르기 위해 쌓아 올린 성의 높이를 조금씩 낮춘다. 그렇게 나는 그 느린 응시를 내 일상으로 가져오려 한다. 한 걸음 물러서 상대의 맥락을 들을 때 상처는 얇아지고, 관계는 비로소 한 뼘 자란다는 것임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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