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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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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849회 작성일 25-11-2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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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생활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학부 때에 비해서 커다란 취향 변화가 여럿 있었다. 그 중에 하나로, 예전에는 흥미 및 스토리 위주로 각종 영상을 찾아봤다고 하면 지금은 퇴근 후에 생각을 내려놓고 볼 수 있는 매체를 주로 찾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새 자주 보는 것으로는 ‘냥숲’ (시골 마을에서 고양이와 함께 전원 생활을 누리는 일상을 찍음), ‘문나잇’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 예쁘게 꾸민 자취방에서의 일상을 올림) 등으로,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예쁜 것들, 그리고 보면서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찾게 된 것 같다. 아무래도 평소에 복잡한 생각을 달고 사는 만큼 뇌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 걸 지도 모르겠다.


“리틀 포레스트” 시리즈도 그렇게 찾아보게 된 영화 중 하나로, 일본 원작과 배우 김태리가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던 한국 버전 모두 찾아보게 되었다. 두 버전 모두 공통적으로 도시 생활에 지지쳐 고향인 시골에서 뇌를 비우면서 재충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 내었다는 것이다. 대학원 연구실에서의 삶은 언제나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돌려도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실패하기 일쑤고, 며칠 밤을 새워 데이터를 뽑아내더라도 그것이 논문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수많은 수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적어도 연구의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쏟은 시간과 정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결과값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는 무력감, 그것이 대학원 생활을 해 오면서 나를 가장 지치고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반면, 영화에서 그려지는 시골 생활은 단조롭다. 팥을 삶고 설탕을 넣어 졸이면 달콤한 단팥이 되고,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베어 물면 그 즉시 신선한 과즙이 입안을 채운다. 밀가루를 반죽해 숙성시키면 부풀어 오르고, 그것을 오븐에 넣으면 빵이 된다. 여기에는 배신이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정직하게 맛으로, 향으로, 그리고 포만감으로 보답한다. 혜원(김태리 분)이 시루떡을 찌고 막걸리를 빚는 과정을 보며 내가 느꼈던 묘한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내 일상에 결핍된 ‘확실한 인과관계’와 ‘즉각적인 성취감’을 대리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수식이나 논리적 검증 없이도, 그저 재료를 손질하는 '삭, 삭' 하는 소리와 보글거리는 찌개 소리만으로도 곤두선 신경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영화는 사계절을 온전히 겪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고, 뙤약볕을 견뎌야 가을의 수확이 있다는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연구실 창밖의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과제 보고서/발표 일정, 각종 마감 일정, 학위 심사 일정과 저널 마감일 등에만 맞춰진 나의 시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영화 속에서 혜원은 아주심기(식물을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한 밭에 심는 것)를 준비한다. 그녀가 고향에 머문 시간은 도피가 아니라,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영양분을 비축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학위 과정의 마무리를 찍기 위해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는 지금, 나는 과연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가지고 있는가 자문해 본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훌쩍 시골로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퇴근 후 맥주 한 캔을 따고 강아지 고양이 영상을 보며 멍하니 있는 그 시간, 혹은 주말 오후에 가끔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토마토 파스타를 천천히 만들어 먹는 그 짧은 순간들이 바로 나의 리틀 포레스트일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귀농이나 완벽한 탈출이 아니더라도, 내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작은 틈을 만들어주는 것.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 그리고 나를 옥죄는 성과 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 화면 가득 채워지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정갈한 음식들의 향연은 눈과 귀를 씻어주는 듯했다.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이 무사히 끝나고 나면, 나도 영화 속 혜원처럼 직접 키운 콩국수와 수제비 한 그릇을 시원하게 들이키며 "아, 시원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때까지는, 퇴근 후 잠시 마주하는 잔잔한 위로를 버팀목 삼아,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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