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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실리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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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847회 작성일 25-11-2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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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실리콘 세계

- 한중일 SF 작가 8인 단편선 (문학동네) -


 

 집어 들 수 밖에 없는 제목의 책이었다. 

‘산화물이나 2D보다 역시 Si이지!’ 하는 이야기일까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펼쳤지만, 당연히 그런 내용은 아니었고, 해마다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 변화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한/중/일 SF 작가들의 단편집이었다. 

1.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물리학 법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2. 머지않아 곧 실현 가능할 듯한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비판적 탐구. 

이 두 가지 규칙을 기반으로 작성된 8개의 단편들은, 발달된 기술이 약속하는 윤택하고 설레는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환경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지, 또 어떤 혼란을 맞이하게 될 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가족과 사회의 구성 -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동물+친구X로봇』, 『멋진 실리콘 세계』

개인이 생존하고, 성장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며 의식주와 같은 기본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고, 정서적 안정과 유대감을 얻으며,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회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의 개인이 존재해야 한다.  

이 책의 포문을 여는 이야기인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에서는, 저조한 출산율과 전쟁, 사회 갈등으로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된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 소멸의 위기 앞에서, 인구수를 의도적으로 늘리기 위해, 국가 주도의 ‘인적 자원’이 생산된다. 건강한 성인들은 세포를 의무적으로 기증하고. 기증된 세포들은 랜덤하게 배양되어 인공자궁에서 성장하고 탄생한다. 해당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국가는 전통적인 임신과 출산을 ‘개인이 짊어져야 했던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고, ‘인적자원생산’은 더 이상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국가가 나서는 것이라며 홍보한다. 또한, 인적자원생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영유아 시절부터 최적화된 교육과 관리시스템 속에서 성장할 수 있기에, 부모의 계층과 소양에 따라 부적절한 양육으로 소외되거나 상처입는 일이 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명분도 덧붙여진다. 이러한 담론 아래에서 ‘인적자원생산’정책은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회에 자리잡게 되고, 부부의 사랑과 관계로 ‘태생’된 아이들의 수 보다 ‘배양’된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사회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며, 한 생명의 탄생이 어느 가정의 축복이 아니라, 인구수 조절과 생산 비용이라는 국가 정책의 숫자로 이야기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또다른 단편, 『동물+친구x로봇』에서는 과학자, 공학자,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실험/계획도시인 ‘시튼빌리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실험적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도시로,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12세가 되면 ‘수호동물’을 선물받는다. 생물학적 동물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학습을 돕기 위해 설계된 이 로봇 동물을 통해 아이는 돌봄·책임·유대감 등을 배우며 성장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관계 맺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조율한 안전한 유대감에 기반한, 갈등이나 충돌, 이해의 어긋남이 제거된 만남 안에서 자라온 아이들은, 스무살이 되어 마을 밖 사회에 진출하게 된 후 자신의 환경과 달랐던 실제 사회에 큰 충격을 받게 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신이 어떤 조작된 환경안에서 살아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위의 두 이야기에서는 기술 발전이 극단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그리며, 한 국가나 마을 전체가 거대한 생쥐 케이스처럼 실험 대상으로 취급되는 디스토피아적 면모를 담고 있었다. 

 반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멋진 실리콘 세계』 에서는 기술 발전이 사회구성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었다.  AR 기술을 이용하여 AI 가상친구를 구현하는 ‘실리콘 컴패니언(Silicone companion)’ 줄여서 ‘실리’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의 인간관계가 피곤해진 사람들은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대신, 언제든 호출할 수 있고, 언제나 나에게 우호적이며, 나의 감정과 필요를 즉각적으로 반영해주는 실리와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의 초반에서는, 실리가 성행하면서 중독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실리에 강한 규제를 적용하게 된다. 정부의 규제 속에서 실리는, 사람과 대화한다기 보다는 로봇과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한, 전형적인 현대의 AI 챗봇이었다. 건네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실리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은 기능 규제가 없는 불법 실리를 접하게 된다. 불법 실리는 정부의 제약이 없기에 훨씬 더 정교하고 능동적이며, 사람들의 심적 요구를 충족해주는 존재로서, 개개인의 삶에 깊게 침투하게 된다. 마치 잘 맞는 친구처럼, 그리고 연인처럼 사람들의 곁을 지키게 된 실리에 사람들은 점점 둥이 되고, 일상의 모든 활동을 실리에 의존해서 행하게 된다. 

 연인과 싸우게 되면, 친한 친구에게 토로하듯 실리에게 털어놓고.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도 실리에게 회사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걱정 또한, 믿음직한 어른이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처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실리가 없으면 안 될 정도로 가상현실 AI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의외로 이 실리는 오히려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데 도움을 주게 된다. AI의 조언대로 행동한 덕분에, 헤어졌던 연인과의 과거의 관계를 복원하고, 기존보다 쉽게 일상의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심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 육아의 부담스러움은 육아로봇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등 사람들은 예전보다 쉽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 기술이 설계한 감정적 안정성을 통해 '가족의 재구성'이 이루어지고,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기술이 향해야 할 지점 

이 책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모두 ‘머지않아 곧 실현 가능할 듯한 과학기술’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인공 자궁·AI·로봇·기후 제어 같은 기술들이 여러 이야기 속에서 반복된다. 같은 기술을 다루었음에도 어떤 이야기는 그럴 듯한 부정적 미래를, 또 어떤 이야기는 그럴 듯한 긍정적 미래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무엇이 그 방향을 갈라놓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에서 인공 자궁은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적 해법으로 등장하지만, 곧 인간을 ‘생산 단위’로 환산하는 체계의 토대가 된다. 개인의 부담을 줄이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지만, 결국 국가의 효율성 기준에 따라 생명의 숫자가 세어지고, 생산되는 세계로 이어진다. 반대로 『멋진 실리콘 세계』의 실리는 무작정 사람들의 불만에 공감하며 기분만을 맞추는 존재가 아니라, 적절한 조언을 통해 사람들이 심리적 여유를 되찾고, 다시 사회로 돌아가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이용자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복원하며, 자연스럽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인구가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대비를 보고 나니, 기술이 불러올 미래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사용하려는 우리의 태도에 더 많이 달려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래에 인공 자궁이 보편화된다면 자연스럽게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임신과 출산의 위험과 고통을 덜고, 더 안전한 방식으로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다’는 가벼운 판단만으로 모든 기술 발전을 받아들이기에는, 이 책에서처럼 기술 하나가 사회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기술 개발이 향해야 할 지점은, 얼마나 새롭게, 어디까지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연구개발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는 데 있는 것 같다. 해당 연구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 내고 싶은지, 어떤 파급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기술이 개발되고 통용된다면, 의도하지 않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것이다’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재편하고, 때로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사람의 태도와 윤리 의식은 결코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모든 과학기술은 결국 도구일 뿐이다. 이 도구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지, 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지는 전적으로 그 기술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어쩌면 과학기술인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뛰어난 연구개발 능력이 아니라(물론 필수적이지만), 기술이 오용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미칠 파장을 언제나 책임있게 고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 과학기술인들은 특히 더, 인류 전체를 향한 애정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느끼며 감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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