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28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호석
댓글 0건 조회 728회 작성일 25-11-22 23:32

본문


28일

-정유정의「28」를 읽고-

 

 

정유정의 소설 「28」은 살아남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파괴된 인간 세상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삶의 삼라만상을 풀어낸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시대와 학문에 따라 정의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보편적으로는 공감과 이성을 중심으로 덕과 윤리적 의식을 갖춘 행동을 인간답다고 한다.

그러나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 자체야말로 가장 ‘인간스러운’ 모습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작가가 바라본 ‘인간다움’ 역시 인간 내면의 이기심과 사악한 본성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 소설의 분위기는 결코 따뜻하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 ‘28’은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퍼져 봉쇄된 가상도시 ‘화양’에서 28일 동안 벌어진 참혹한 사건들을 뜻한다. 이 괴질은 개에서 시작된 듯 보이며 인간에게도 전염된다. 감염된 사람들은 눈이 벌겋게 충혈되고 고열 속에서 극심한 통증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생존이 위협받는 순간 인간은 가장 본능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고, 그 과정에서 이기심과 잔혹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초기에 사람들은 병의 실체를 몰라 우왕좌왕하지만,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개’가 원인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해 무차별적 살상이 벌어진다. 정부는 화양을 봉쇄해 다른 지역으로의 확산을 막는 임시조치만 할 뿐, 질병의 근원이나 치료법을 찾지 못한 채 사실상 기능을 잃는다. 그리고 무너진 질서 속에서 도시는 인권도 법도 사라진 채 무법천지가 되어 간다.

한 번 파괴되기 시작한 사회적 규범은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작가는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파고들듯 묘사한다.

 

오늘의 ‘화양’

소설에는 감염내과 과장 박남철과 간호수 노수진이 등장한다. 이들의 존재는 특히 인상 깊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통제력과 이성이 사라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극한의 의료 재난 한가운데에서 떠나지 못하고 고뇌한다. 의료진의 숙명이라 하기엔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다. 끝까지 병원을 지킨 이들의 선택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소설 속 상황은, 어쩌면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처럼, 스스로 만든 줄에 자신이 묶이는 현실이 한국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법의학’이 가뜩이나 어려운 대한민국 필수의료를 더욱 붕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한 고등학생이 응급실을 찾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벌어졌다. 병원들은 ‘소아 진료 불가’를 이유로 연달아 거부했고, 심정지 이후에도 ‘소아 심정지 불가’를 이유로 수용을 거절했다.

고의성이 없는 의료사고에도 수십억 원대 배상 판결이 내려지고, 레지던트 1년 차에게마저 실형이 선고된다. 분만이나 응급 대응 후 발생한 불가피한 사고까지 개인의 과실로 규정되며 과도한 책임이 부과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응급실 뺑뺑이’ 같은 비극이다. 그러면 또다시 의사와 병원에 대한 맹목적 비난이 이어진다. 살고자 하는, 혹은 살려야만 한다는 ‘인간스러운’ 본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소설 속 시민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개’를 마구 죽였던 것처럼, 현실의 우리는 의료 시스템 붕괴라는 복잡한 문제를 들여다보기보다 ‘나쁜 병원’, ‘무책임한 의사’를 욕함으로써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그 분노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사명감을 당연하게 소비해 온 우리의 이기심이 있다.

 

의사를 무조건 옹호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의료진에게 사명감과 헌신을 요구하고 싶다면,

그 사명감이 발휘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부족한 환경에서 끝없이 책임만 떠안는 구조라면, 누구도 그 자리에 남아 버틸 수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그 위에서야 비로소 ‘사명감’이라는 가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